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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사 명장면]북방외교의 또 다른 성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입력 | 2015-08-17 03:00:00

[광복 70년]“南 유엔가입 신청때 반대 안할것” 中총리 발언에 김일성 아연실색




1990년말 안기부의 외교동향 분석 문건 1990년 말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국가안전기획부 문서. ‘한국의 UN가입 추진 관련 안보리 상임이사국 태도’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각국 외교관을 개별 접촉해 남북한에 대한 입장 변화를 추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한국 정부의 북방외교는 북한에 매우 공격적인 압박정책이었다. 북한을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어야만 대화에 응할 것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보기관까지 나서 북한의 우방국들을 포섭하고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에 비해 북한은 시대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북, 중국의 태도 변화 포착 못해

“우리는 교차 승인이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김일성은 1991년 4월 19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에 대해 “조선(한반도)의 분열을 영구화하려는 목적”이라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1개월도 지나지 않아 방북한 리펑(李鵬) 중국 총리가 “북한의 유엔 가입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고 ‘폭탄선언’을 하자 김일성은 아연실색했다.

5월 3일 방북한 리 총리는 “남한이 올해 유엔 가입을 신청하면 중국은 반대하기 힘들 것”이라며 “일단 남한이 유엔 회원국이 되고 나면 북한은 유엔에 가입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북한은 5월 28일 “한국 단독 유엔 가입을 수수방관할 수 없어 현 단계에 유엔에 가입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노선을 전격 수정했다.

북한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1990년 9월 1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한국과 합의하고 연형묵 북한 총리가 서울까지 온 것 자체가 위기대응 차원이었다. 연형묵은 ‘유엔 동시 가입 시도 중단’을 첫 의제로 제기할 만큼 관심도 높았다. 하지만 기존 주장을 반복하며 생떼를 쓰는 것으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당시 회담에 나갔던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한국 정부의 존립 자체를 비판하고 나오면 회담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 안기부까지 나서 북한 우방국 분석

반면 한국은 기민하게 움직이며 정보기관까지 나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동태를 살폈다.

동아일보가 16일 입수한 ‘한국의 UN 가입 추진 관련 안보리 상임이사국 태도’라는 제목의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문건을 보면 한국은 유엔 가입 수년전부터 안보리의 태도 변화를 체크해왔다.

특히 “소련이 한국의 유엔 가입에 반대치 않는다면 중국은 딜레마에 봉착. 중국은 과거 20년간 단 1회 방글라데시 가입신청권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으나 가급적 거부권을 행사치 않는다는 기본적 입장(1989.12.14 왕(Wang) 주유엔 참사관)” 등 중국 외교관들이 다수 등장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안기부는 “한국이 단독 유엔 가입을 신청할 경우 첫 번째는 거부권을 사용할 것이나 두 번째는 행사하지 않을 것임(1990.4.3 리다오유(李道豫) 외교부 유엔·국제기구담당 차관보)” 등 실무자부터 고위급까지 중국, 소련 외교관을 두루 접촉하며 기류 변화를 점검했고 유엔 가입 시도는 1991년이 적기라는 사실도 찾아냈다.

북방외교를 통해 한국이 공산국가와 수교를 늘린 것은 북한에 단순히 동맹을 잃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한국과 수교에 앞선 경협차관 협상 과정에서 소련의 유리 마슬류코프 부총리는 “지금 내 책상 위에 북한의 T-80 전차 지원요청서가 있다. 한국과 수교가 되고 차관이 들어오면 이 전차를 포함해 북한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했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소련이 북한에 그동안 우호가격으로 제공하던 물품에 국제 시장가격이 적용되면서 북한이 입은 경제적 타격은 더욱 커졌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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