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못 맞춰 거액 손실본 한은… 金매입 진짜 목적은 위험분산용 일반인이 투자하려면 기대 낮추고 운용 가능한 돈의 10%만 매입해야 직접투자보단 예금-펀드가 합리적
홍수용 기자
과연 한은은 실패한 투자가일까. 금 수급 동향을 잘 알고 있었을 한은이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채선병 외자운용원장 등 한은 관계자들에게 물어 당시 금을 산 이유와 투자 철학을 찬찬히 뜯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투자 타이밍은 나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개미들이 배울 점이 적지 않다.
우선 타이밍은 한은도 할 말이 없다. 한은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금 모으기 운동 때 수집된 금 3t을 산 뒤 13년 동안 금을 사지 않았다. 그동안 국제 금값은 1온스당 200∼900달러였다. 그러다 2011년 7월부터 2013년 2월까지 금값이 1온스당 1575∼1723달러로 치솟았을 때 한은이 장부가격 기준 47억1000만 달러어치의 금을 샀다. 뒷북 쳤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이어 한은 관계자에게 금값이 오른 뒤 뒤늦게 산 이유를 물었더니 “2010년 이전에는 보유 외환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보유 외환은 2001년에야 1000억 달러 선을 넘었다. 2008년 외환위기 때는 보유 외환이 전년보다 600억 달러나 감소하기도 했다. 개인도 ‘금테크’ 한다면서 무리해선 안 된다. 여윳돈으로 투자하라. 지금 금값이 폭락해도 생활비 쓰고 대출이자 갚은 뒤 남는 돈이 적다면 금에 투자하지 말라. 특히 부채가 많아 금리가 오를 때 상환 부담이 크게 늘 수 있다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궁금해 하는 ‘한은은 금을 팔 것인가, 더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한은은 금을 매매할 때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지 단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다.
그 대신 ‘금의 가치가 미국 달러화 가치와 거꾸로 간다’는 명제는 유효하다는 힌트를 줬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금화는 실제 화폐였다. 금은 통화로서의 속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주력 통화인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다른 통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듯 금 가치도 하락하기 마련이다. 2011∼13년 한은이 금을 매집한 데는 달러 가치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더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판단은 결과적으로 잘못됐지만 다음 달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 가치는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금값도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다. 금 전문가들이 대부분 ‘좀더 기다리는 게 낫다’고 하는 건 이런 가격 전망 때문이다.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은 금 투자에 부정적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거위(금)를 사는 것보다 계속해서 알을 낳는 거위(주식)를 사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였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