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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써봤어요]삼천리 ‘팬텀 미니 전기자전거’

입력 | 2015-08-18 03:00:00

주행 성능은 만족… 위협 운전 차량에는 아찔




본보 서동일 기자가 삼천리자전거 ‘팬텀 미니 전기자전거’를 타고 있다. 서 기자는 1주 동안 전기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자전거 성능이 아니라 ‘배려 없는 도로 문화’가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늘어나는 뱃살 탓에 몇 번이고 새벽 혹은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해 보려 애썼지만 회식과 야근, 늦잠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자전거 출퇴근’입니다. 기왕 하는 출퇴근, 운동과 병행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평지가 대부분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크고 작은 ‘헐떡 고개’가 많은 편이어서 자전거 출퇴근이 사실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기자전거라면 어떨까요. 전기자전거 가격이 대부분 100만 원을 훌쩍 넘어 부담이 크긴 하지만 잊을 만하면 오르는 버스·지하철 요금도 아끼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삼천리자전거가 올해 4월 새로 내놓은 ‘팬텀 미니 전기자전거’(135만 원)로 일주일 동안 출퇴근해 봤습니다. 기자의 집은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입니다. 동아일보 사옥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까지는 약 9km. 승용차로 20분, 대중교통으로 약 45분이 걸립니다.

전기자전거 출퇴근 시간은 50여 분으로 대중교통과 큰 차가 없었습니다. 배터리는 한 번 충전으로 3∼5일은 버텨 충전에 대한 압박도 적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기능은 페달을 밟으면 모터가 동시에 작동하는 ‘파스(PAS·Power Assist System)’였습니다. 페달을 밟으 때 누군가 뒤에서 부드럽게 밀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쉽게 속도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모터로만 주행하는 ‘스로틀(Throttle)’ 기능을 작동하면 언덕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전기자전거 성능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기자는 전기자전거 출퇴근을 포기했습니다. 자전거를 위협하는 도로 위 차량들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전기자전거는 인도나 자전거도로로 달리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차도로 달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전기자전거는 사실 자전거보다는 오토바이에 가깝습니다.

전기자전거 출근 첫날, ‘운전자들이 배려해 주겠지’란 기대를 품고 출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양 옆으로 달리는 차들은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았습니다. 쉬지 않고 경적을 울려 댔습니다. 일부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욕하고 위협 운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이 인도와 차도의 경계선으로 달리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 불가능했습니다.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도로나 인도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 사실상 곡예 운전을 해야 했습니다. 차도로 달리자니 무섭고, 인도로 올라서자니 보행자와 부딪힐까 걱정이 돼 좀처럼 속도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도난 사고에 대한 걱정도 컸습니다. 전기자전거 속도와 작동 방식을 표시하는 계기반과 몸통 쪽에 있는 배터리는 ‘난 비싼 전기자전거’란 티를 팍팍 냈습니다. 누가 봐도 도난의 표적이 되기 쉬워 보였습니다. 퇴근길 저녁거리를 사러 잠시 슈퍼에 들어갈 때도 세워 둔 자전거가 걱정돼 서둘러 나와야 했습니다.

자전거 출퇴근을 결정짓는 요소는 자전거 성능이나 직장인의 부지런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전거를 배려하는 도로 위 문화와 시민의 안전의식 수준이었습니다.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1만3000대(120억 원) 수준으로 전 세계 판매량의 0.04%에 불과합니다. 유럽연합(EU)은 매년 20% 안팎으로 전기자전거 시장이 성장한다는데 한국이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