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말한다]<7>몽타주, 여전히 중요한 해결사
경찰청 증거분석계 이상숙 행정관이 13일 몽타주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해 용의자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는지 시연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둠과 사람 얼굴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았지만, 위급한 상황일수록 인간의 뇌는 더욱 영민해진다. A 양(당시 12세)은 범인 얼굴을 순간적으로 두 눈에 깊숙이 담았다. 할머니가 쫓아오는 소리에 범인은 집 밖으로 도주했다.
2013년 벌어진 이 사건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청 이상숙 증거분석계 행정관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날아갔다. 지역별로 몽타주 담당자가 1, 2명 있는데 당시 제주도에는 몽타주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과거에 몽타주로 작성했었던 범죄 용의자들의 얼굴이 계속 축적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이 누구와 비슷한지’ 피해자나 목격자가 참조할 수 있다. 똑같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이 사람과 비슷한데 눈이 좀 더 처졌던 것 같다”고 말하면, 컴퓨터 작업을 통해 부위를 수정한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컴퓨터 속 ‘펜’과 ‘브러시’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 때문에 몽타주 요원을 뽑을 땐 예술 감각이 높은 사람들을 선호한다. 이 행정관 역시 의상학을 전공했다.
A 양의 증언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완성했다. 이 행정관은 컬러와 흑백으로 각각 출력해 어떤 사진이 당시의 느낌과 더 가까운지 물었다. 범죄는 어둠 속에서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자 중 70%는 흑백사진을 고른다. 경찰들은 이를 바탕으로 용의자를 찾으러 다녔다. 결국 용의자(당시 39세)를 검거할 수 있었다.
몽타주는 프랑스어로 ‘조립하다’라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연평균 300건을 넘던 전국 몽타주 의뢰 건수는 지금은 100여 건으로 줄어들었다. 목격자를 찾는 것보다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각지대나 변두리 지역 등에선 몽타주가 여전히 범죄 해결의 중요한 단서다.
국내에서 몽타주 업무가 시작된 것은 1975년 경찰이 화가를 특채로 뽑던 때부터다. 1995년 미국 프로그램을 잠깐 수입해 쓴 적도 있었지만, 한국인 외모와 차이가 났다. 1999년 도입된 한국인 프로그램은 눈 코 입 광대뼈 형태를 포함해 총 1만1000여 개의 부위별 데이터베이스가 현재 구축되어 있다. 머리카락 형태만 하더라도 1185개에 이른다. 모자나 안경 소품도 고를 수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