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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언론-지식인의 역할 중요” vs “2000년 선린관계 잊지 말아야”

입력 | 2015-08-18 03:00:00

‘한일 관계 미래 이렇게 열자’ 전문가 대담<중>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한일관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대담하는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왼쪽)과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두 번째 대담의 주인공들은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71)과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67)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다. 두 사람은 한일 수교 50년을 맞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한일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책을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했다. 대담은 올 5월 18일 와카미야 전 주필이 한국에 왔을 때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됐으며 이후 이메일 인터뷰 등을 통해 내용을 추가했다. 》






―14일 나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평가부터 해주시죠.

▽정구종=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사 과오를 남의 나라 얘기하듯 인색하게나마 인정한 것은 한국 중국 등 피해 당사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여론을 의식하면서 일본 국내 논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침략과 식민지배 등에 대한 사죄 및 반성과 관련해 정권적 차원에서 계승하겠다고 한 것은 약속이니만큼 앞으로 실행 여부가 주목됩니다.

▽와카미야=아베 총리가 그동안 무라야마 담화를 자신이 새로 쓰고 싶다고 하는 등 부정적인 것을 말해 왔기 때문에 모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계승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는 의미에서는 평가라고 할까… 약간 안심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우파 주장도 배려했기 때문에 전체가 타협의 산물로 내용은 길지만 뭘 말하려는지 메시지가 모호해졌습니다. 제가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가 봐도 불만스러운 점입니다.

―전후 70년, 광복 70주년을 맞는 일본과 한국에 올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와카미야=
일본에서는 큰 분기점이 됐습니다. 일본은 지난 70년간 어떤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일입니다. 자위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평화헌법으로 스스로 엄격한 틀을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지금 정부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고 해 온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단행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전환에 당황해하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평화국가라는 간판을 스스로 내리고 전쟁에 휘말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입니다.

▽정=대한민국은 경제 건설과 정치 민주화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한 드문 나라이지만 보다 나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나라의 진로를 새로이 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해양 진출을 강화하며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긴박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찾아 나가는 혜안이 절실합니다.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할 한국인과 일본인들 간의 인식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카미야=
확실히 그 부분이 문제입니다. 아베 정권은 과거의 일본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대신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언동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래서 불안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이 “(평화)헌법을 지켜라”, “무라야마 담화를 지켜라”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중시했으면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최근 양국 정부는 차이를 강조하는 길을 걷고 쌍방의 미디어도 그것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정부를 꾸짖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정치가 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입니다.

▽정=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2000여 년에 이르는 교류와 협력의 선린 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비록 중·근세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 등 불행한 역사가 있었지만 전통적 우호 협력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우니까 침략의 역사도 있었고 굴곡의 역사도 있었습니다만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우호 친선으로 교류하던 시대가 더 길었다고들 합니다.

요즘 동아일보 국제부가 주관이 되어 ‘한일수교 50년 한일교류 2000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고대 한일 관계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를 읽어봐도 느껴지지만 일본 열도의 문화와 역사를 말할 때 한반도와 한국인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한일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한일 문화교류 일선에서 앞장서서 실천해 온 분들, 그리고 안정적 한일 관계의 장래를 위해 다양한 제언을 말해주는 지식인, 문화인들의 증언을 기록해 책으로 묶었습니다.

―뭘 느끼셨는지요.

▽정=
지금 일본에는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한 한국인 조상들의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심수관, 이삼평처럼 일본에서 도예 문화를 꽃피운 조선 도공의 후예들, 조선의 민예를 사랑하며 보존해 온 야나기 무네요시, 현대 연극무대에서 한일 연극 교류에 앞장서 온 히라타 오리자, 케이팝을 일본에 널리 알린 후루야 마사유키, 한중일의 차(茶) 문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 공존을 호소하는 우라센케의 센 겐시쓰…. 역사와 외교의 갈등을 넘어서 한일의 새로운 미래 건설을 호소하는 지식인들은 이런 교류의 확산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하더군요.

―와카미야 선생께서도 한국 내 다양한 분들을 만나셨지요.

▽와카미야=
젊은 시절 서울에서 유학을 한 이후 한국에 줄곧 관심을 가져온 저로서는 수교 50년을 맞아 한국의 지일파를 중심으로 이들이 과거를 어떻게 평가하고 미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견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이낙연 전남도지사 등 지자체장에서부터 이어령 송호근(서울대) 선생, 가수 조용필, 축구감독 홍명보, 소설가 김진명 씨까지 모두 18명을 만났습니다.

―어떤 것을 느끼셨나요.

▽와카미야=
한일 관계가 정치 외교적으로는 좋지 않지만 국민 교류나 관계는 매우 친밀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지방과 지방 간 교류가 많아졌고 시민단체 간에도 교류가 많이 늘었습니다. 소설가 김진명 씨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분은 20년 후에 자위대가 독도를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더군요(웃음). 내가 상상하던 전형적인 반일(反日)주의자와는 달랐습니다. 일본인들의 장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까요. 홍명보 감독이 양국에서 축구를 체험한 다음에 일본과 한국의 스타일을 섞으면 정말 강한 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지컬 코치로 일본인을 삼고초려해 모셨다는 일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그런 인연이 여러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 한일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소장께서는 기억나는 분이 누구인지요.

▽정=
한국·조선 문화재 반환 문제 연락회의 대표인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가 떠오릅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약탈하거나 무리하게 일본으로 반출한 조선 문화재를 한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분인데 일본에 있는 것 중 확인되지 않은 한반도 문화재를 조사해 경로를 밝히고 불법 반출됐다면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게 이분의 신념이었습니다.

―한일 간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가야 할까요.

▽와카미야=
이번에 인터뷰집을 내면서 50년 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했던 선인들의 고된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매국노라는 질책을 받았고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외상도 총리로부터 질책을 당했습니다. 당사자들의 고뇌를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은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일 모두 매스미디어와 지식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일본의 과거 실패에서 배웠으면 합니다. 아베 담화가 적어도 최악의 결과는 아니었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절제된 코멘트를 했으니 이걸 계기로 정상회담도 하고 위안부 문제도 해결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정=박 대통령이 8·15 기념사에서 아베 담화에 대해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의 역대 내각의 이행에 주목한다”고 언급한 것은 역사 인식에 대한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후 70년의 교훈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과 상생의 미래 구축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한일 관계가 바닥을 쳤다고 보십니까.

▽함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약력 ::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정치부장 논설주간 주필을 지냈다. 현재 일본
국제교류센터의 시니어펠로인 동시에 게이오대, 서울대, 동서대의 객원교수, 연구원으로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2010년 8월부터 월 1회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정구종

동아일보
사회부장 편집국장 동아닷컴 사장을 지냈으며 도쿄특파원 도쿄지사장을 역임했다. 한일미래포럼 대표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을 지냈으며
한일 전·현직 외교관, 언론인, 경제인, 대학교수 등이 참가하는 한일지식인토론회를 매달 1회 열고 있다.





진행=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정리=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