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A는 라이브 연주시설을 갖춘 공간에서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팀이다. 개성 있는 연주와 퍼포먼스로 인디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내 주변에도 A의 활동에 호감을 표현하는 지인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따금 지인들은 A에 대해 궁금한 점을 내게 묻곤 한다. 주로 ‘나이가 어떻게 돼?’ 같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속을 시원히 긁어줄 방법이 내겐 없다. 나도 A 멤버들의 나이를 모른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지 싱거운 대답에 뭔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더러는 “그런 것도 안 물어보고 뭐 하고 노냐?” 혹은 “아메리칸 스타일이냐?”라는 엉뚱한 대답을 듣기도 한다.
첫 대면의 풍경을 떠올리면 한국에서 나이를 모른 채 지내는 게 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처음 인사를 나누며 ‘무엇을 하는 아무개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소개를 마치면 매뉴얼을 따르듯 질문을 몇 개 주고받는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같은. 밝혀진 나이를 셈한 후에는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감도는데, 보이지 않는 경계는 태어난 해로 서열을 정리해야 비로소 허물어진다. 학교와 직장 등 사회 속에서 무수히 반복하는 과정이라 진행은 제법 매끄럽게 이어진다. “내가 형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혹은 “제가 동생이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사소하게는 친구를 친구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있겠다. “친한 형(동생)이야”라는 말에서는 왠지 생면부지보다 먼 거리감이 느껴져 만족스럽지 못한 때가 있다. 가끔은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친구라고 소개를 하는데 그러면 상대로부터 동갑이냐는 말이 돌아온다. “나이는 제가 어리지만 친구예요”라는 설명을 붙여야 비로소 ‘아’ 하고 만다. 다른 건 얼렁뚱땅 넘어가도 나이만큼은 확실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는 친구의 뜻을 단순히 나이가 같은 사람으로 한정 짓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다.
A의 멤버들과 시간을 나누며, 친구가 되는 데는 나이를 모르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계는 보통 공통의 관심과 공감에서 시작해 천천히 아주 동등하게 나아간다. 그사이 유교적 관념에 기초한 나이는 우정에 방해꾼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나이가 같은 사람하고만 친해져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 밴드의 노랫말처럼 ‘사람은 그저 괜히 마음 가는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법이다. 나이로 쉽게 구분 지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돌아봐야겠다.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