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문화부 기자
방송 담당이 TV를 보지 않고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업무에는 지장이 없다. TV라는 도구 없이 다른 매체로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지상파 프로그램은 각 방송사 홈페이지나 지상파 방송사가 직접 운영하는 다시보기 서비스 ‘푹’을 통해, 케이블TV는 CJ헬로비전의 ‘티빙’이나 올레TV, SK브로드밴드 등 인터넷TV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시청한다. 종합편성채널을 보려면 ‘에브리온TV’에 접속해 실시간 방송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본방 사수’를 위해서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도 있다. 네이버, 유튜브 등이 무료로 제공하는 1분 내외 하이라이트 영상만 훑어봐도 어젯밤 무슨 프로가 재밌었는지 감이 잡힌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TV를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제로TV’는 TV 시청 행태에 영향을 주고 있다. 본방 사수를 위해 귀갓길을 재촉하거나 거실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를 보는 일은 점차 추억 속 풍경이 되고 있다. 그 대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프로를 한 번에 몰아 보는 ‘빈지(binge·폭음이나 폭식) 워칭’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각자 방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TV 시청의 개인화 경향이 두드러지며 혹자는 가족 간 소통 부재를 우려한다.
그렇다면 TV를 없앤 나의 집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가족 간 대화가 늘어나기를 기대하며 TV를 없앴지만 대화가 크게 늘지 않았다. ‘카우치 포테이토족’처럼 소파에 앉아 빈둥거리는 TV 시청은 줄었지만, 불편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TV 보는 일이 잦아졌다. 언제 어디서든 TV 시청이 가능하니 절대적인 시청 시간은 되레 늘었다.
미디어 전문가이자 미래학자인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은 “우리가 도구를 만들지만 그 후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TV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TV를 없앤 ‘제로TV가구’는 스마트폰이라는 복병을 만나 새로운 도구의 지배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이들이 스마트한 시청자로 거듭날지, ‘골방의 손바닥TV족’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