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8월 19일
광복 70주년을 맞고, 영화 ‘암살’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다. 많은 관객은 또 극중 해방 이후 일제 밀정 염석진(이정재)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특별재판에서 자신의 친일행위를 뻔뻔하게 부인하는 장면을 보고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일제 식민의 잔재를 떠올리고 있다. 안옥윤(전지현)이 그를 처단하는 장면은 어쩌면 그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판타지’인지도 모른다.
1990년 오늘, MBC가 8·15 특집극 ‘반민특위(사진)’를 방송했다. 모두 3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는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친일 세력과 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역사적 발걸음에 나선 반민특위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기팔 작가의 대본을 신호균 PD가 연출했다.
최불암 신구 전운 박규채 김상순 길용우 백윤식 김진태 김용건 정한용 등 150여명의 연기자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친일사업가 박흥식, 신익희 국회의장, 춘원 이광수 등 당시 반민특위와 얽힌 실제 인물들을 연기했다. 김상덕 반민특위원장 역은 한인수가 맡아 열연했다.
제작진은 당시 재판 기록과 국회 속기록, 신문기사 등 자료 조사를 통해 허구보다는 사실에 근거한 드라마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나친 사실 위주의 서술은 나열식 접근이어서 극적 효과는 살리지 못했다는 비평도 얻었다. 사건의 단순배열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지적이었다.
1948년 9월 공포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10월 설치된 반민특위는 친일사업가 박흥식, 관동군 밀정 이종형, 친일문인 이광수 등을 체포해 특별재판관장인 김병로 대법원장이 이끄는 재판정에 세웠다. 하지만 친일경찰 출신들의 특위위원 암살 기도, 반민특위를 지지한 일부 국회의원에 대한 좌익 프락치 누명, 반민특위 산하 특경대에 대한 경찰 습격 등 친일파들의 ‘저항’과 방해공작이 잇따랐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윤여수 기자 tadada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