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북한대학원대 이우영 교수팀 해외근로 北주민 100명 첫 설문
북한대학원대 ‘SSK 남북한 마음통합 연구단’(단장 이우영 교수)은 올해 3∼6월 해외에 나온 북한 주민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국명 공개를 꺼린 제3국 학계의 도움을 받아 최초로 탈북민이 아닌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 조사는 북한 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경제 활동을 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물질주의 개인주의 성향을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 북한 30대, 자본주의적 성향 두드러져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령대별로는 이들 30대가 가장 물질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가 함경도 출신인 탈북민들과 달리 이번 조사 대상자의 거주지는 평양을 비롯한 주요 지역이 많은 게 특징이다. ‘오늘의 북한 중심부’ 주민의 마음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응답자 중에는 해외 파견 근로자가 대부분이고 노동당 간부, 당원도 포함됐다.
조사 결과는 흥미로웠다. 이런 질문에 북한의 30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호응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가 그 다음이었고 40대가 이런 성향이 가장 낮았다. ‘많이 가질수록 만족감을 느끼고 타인의 성공과 행복에 질투를 느끼는 성향’은 30대(3.76점)와 40대(2.92점) 간의 격차가 컸다. 시장경제 활동 경험이 있는 북한 주민이 시장경제 활동 경험이 없는 주민보다 질투심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에선 자율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도 강했다. 반면 ‘서로 비슷하다고 여기면서 공동체 목표를 강조하는 집단주의 성향’은 가장 약했다. 북한의 30대가 상대적으로 ‘물질을 통해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자율적 개인’의 특징을 보인다는 뜻이다.
○ 북한 30대와 하위층, 북 체제 가치관에 배치
자신을 경제적 하위층이라고 여기는 북한 주민들이 중간층, 상위층에 비해 ‘많이 가질수록 만족감을 느끼고 타인의 성공과 행복에 질투를 느끼는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도 눈에 띈다.
30대와 경제적 하위층에서 드러난 이런 성향은 북한 주민 응답자 전체 결과와 비교하면 더 크게 두드러진다. 응답자 전체로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이 반영된 듯 집단주의 성향이 개인주의보다 강했고,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에 대한 질투심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많이 가질수록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지수도 3점(보통) 이하로 그리 높지 않았다. 북한의 30대와 경제적 하층민이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가치관과 맞지 않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셈이다. 두 집단은 북한의 경제난과 배급체계 붕괴로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이완과 시장화가 유독 이들의 심리와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북한 안주시의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각종 물품을 거래하고 있다. 국가 배급체계가 무너진 뒤 북한 주민들은 이처럼 장마당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출처 미국의소리 방송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세대나 계층일수록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탈북한 박영미(가명·35) 씨의 회상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고난의 행군 뒤 국가의 도움 하나 못 받은 채 굶주리다가 장사에 나서 돈을 많이 버니 그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더라”라며 “국가가 강요하는 대로 살아도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걸 알고 나니 집단주의에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사를 이끈 이우영 교수는 “북한의 새로운 세대인 장마당 세대가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고 남북 관계와 통일 과정에서도 중심 세력이 될 것”이라며 “이들의 변화에 주목해 (통일)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조사 결과는 19일 북한대학원대 주최로 열리는 ‘북한의 마음, 마음의 북한’ 학술회의에서 양문수 교수가 발표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