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군 장교로 근무하던 1995년 북한이 영변에서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남한 확성기를 통해 듣고 깜짝 놀랐다. 북한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소식이었다. 마침 영변 출신 부하가 있어 넌지시 물어보니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나돌았다”고 확인해줬다. 그 뒤 김 대표는 북한 정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남한의 심리전 방송이 다른 병사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비슷했다. 초저녁 매복 작전을 시작하는 북한 병사들에게 남한 방송은 다음 날 새벽까지 노래와 최신 뉴스를 전해주는 미디어나 다름없었다.
▷11년 만에 재개된 남한의 심리전 방송에 북한이 반발하는 것은 그 효과를 너무 잘 아는 까닭이다. 특히 김일성 일가에 대한 언급에 민감해 관련 방송이 시작되면 반드시 확성기를 틀어 방해 공작을 벌인다. 이 때문에 북한의 확성기 방송은 심리전이 아니라 ‘제압 방송’이라고 불린다. 북한의 전방 지휘관에게는 정전으로 확성기를 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발전기 가동용 기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남북은 2004년 6월 장성급 회담 합의에 따라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모든 선전수단을 제거하고 심리전을 중단했다. 장성급 회담의 또 다른 합의는 서해 해상의 우발적 충돌 방지였다. 하지만 북한은 “서해 해상에서 상대방 함정과 민간 선박에 대해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깨고 2010년 천안함 폭침을 자행했다. 심리전 중단 합의도 깨질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은 전방지역 11곳에 확성기를 설치했지만 방송은 하지 않다가 이번 지뢰 도발을 계기로 심리전을 재개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2010년 5·24 대북 제재, 올해 대북 심리전 재개는 모두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제재 조치다. 북의 도발이 없었다면 우리가 심리전에 나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해야 하는 쪽은 북한이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막으려면 뜨뜻미지근한 대응으로는 안 된다. 뜬금없는 5·24 제재 해제 주장으로 북한에 헛된 기대를 하게 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