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산업부장
“지지율 29%짜리 대통령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에 해당하는 2005년 8월 25일 KBS의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자신은 경제를 잘 챙겼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언론의 비우호적 보도로 인해 잘못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불만을 특유의 반어법과 독설로 표현한 것들이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노 전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는 데보다는, 경제가 나쁘지 않다고 강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집권 후반부를 보냈다.
경제적 난제들을 잔뜩 안은 박 대통령이 참고할 만한 전례는 노무현 정부 외에도 두 가지 정도가 더 있는 것 같다. 먼저 또 다른 반면교사로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다.
기업 친화적인 MB노믹스를 앞세워 당선된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력과 소통능력 부족으로 ‘부자감세’ ‘영리병원’ ‘귀족학교’ 등 좌파진영의 낙인찍기 전술에 발목이 잡혀 반환점도 돌기 전에 자신의 정책 컬러를 완전히 포기했다. 그러면서 들고나온 것이 친서민, 공정사회, 동반성장 등의 구호들이다.
물론 이것들이 진정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한 포퓰리즘 정책이었다는 데 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에 이은 알뜰주유소 도입, ‘배춧값 국장’으로 통하는 물가관리책임실명제 시행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명박 정부가 포퓰리즘의 단맛에 빠져 집권 후반기를 허송한 결과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박근혜 정부로 고스란히 상속됐다.
박 대통령에게 벤치마킹이 될 만한 것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사례다. 1998년 집권한 슈뢰더 전 총리는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되자 집권 중반경인 2002년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개혁하기 위한 ‘어젠다2010’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과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그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개혁을 추진하고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치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의지다.”
노동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박 대통령이 남은 2년 반 동안 두고두고 되새겨 봐야 할 말이다.
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