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막강 화력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음지의 누군가가 열정을 쏟기 때문이다. 프로 10년차 골키퍼 권순태가 바로 그런 존재다. 전북 특유의 공격 성향에 위기도 많지만, 그는 묵묵히 몸을 날리며 동료들을 든든하게 한다. 사진제공|K리그
■ 전북 골키퍼 권순태
공격수만 계속 투입하는 전술 적응 어려워
실점은 숙명…경험·실력으로 버티고 극복
경쟁자이자 스승 최은성 GK코치 존재 든든
“나를 보며 프로 골키퍼(GK)의 꿈을 가진 어린이가 한 명만 있어도 그건 성공한 것이다.”
변방의 ‘그저 그런’ 팀에 불과하던 전북이 위대한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챔피언스리그를 정복하면서부터다. 이후 2009년, 2011년, 2014년 K리그를 제패하면서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 영광을 대부분 함께 한 이가 있다. 수문장 권순태(31)다. 군 복무 시절인 2011년을 제외하고 ‘늘 푸른 소나무’처럼 전주성을 지키며 동료들과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시련도, 역경도 있었지만 한순간도 자신의 길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권순태는 “양지가 있다면 음지도 있다. 음지의 이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노력하면 능률도 올라가는 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 ‘밉상’ 최강희 감독?
일반의 인식 속에서 GK는 조명 받지 못하는, 늘 고독하고 외로운 위치일 뿐이다. 권순태는 2014브라질월드컵을 거론했다. 득점왕 경쟁도 치열했지만, 단단한 수비가 부각되면서 많은 GK들이 주목받은 무대였다. “월드컵을 통해 GK들도 스타가 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지금이 좋은 시기다. 더욱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다. 언젠가 현역을 떠나 후배들을 지도할 때 훨씬 풍성한 자원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자신은 ‘스타’로 조명받길 꺼렸다. GK가 화려하면 그만큼 팀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권순태의 ‘촉’은 정확하다. 0-0 상황, 위험지역 파울이 나올 때면 이상하리만치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털이 곤두설 때가 있다. 동료들에게 소리 지르고 위치를 조정해보지만, 느낌은 대개 적중한다. 실점….
“언젠가 강원과 홈경기(2009년 6월 27일·5-2 강원 승)였는데, 이날을 잊을 수 없다. 내내 몰아치다가 한 번 역습당해 실점하고, 그렇게 5골을 내줬다. 수비 2명, 상대 공격 4명. 최근 포항 원정(0-3 패)도 비슷했다. 공격수만 계속 투입하는 벤치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최강희) 감독님이 미웠다.(웃음) 전북 GK에게 역습, 위기, 실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지만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며 한 번쯤 여쭤보고 싶다.”
● 31세 청년, 지금도 자란다!
2006년 데뷔했으니 프로 10년차다. 매년 대대적 선수단 물갈이가 이뤄져온 전북에서 강산이 바뀐다는 시간을 버틴 이는 권순태가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도 항상 극심한 부담감을 안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힘들다”고 했다. 체력도, 경쟁도 아닌 자신과의 싸움 탓이다.
“시간이 흐르면 경험과 실력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어릴 적에는 마음 편히 ‘이렇게, 저렇게 실점할 수 있구나’라며 받아들일 텐데, 지금은 더 잘해야 하고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군 시절(2011∼2012)부터 3년 반 정도가 가장 혹독했다. 많이 다쳤고, 주전도 아니었다. 기복도 심했다. (최)은성이 형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르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 벤치를 지키는 다른 많은 동료들의 마음도 알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태극마크를 향한 꿈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그를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추천할 때마다 감사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2008년과 2012년 3차례에 걸쳐 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권순태는 아직 A매치 데뷔전을 치르지 못 했다.
“항상 자문한다. 대표팀은 멀리 바라본 이상이지만, 제3자가 볼 때 내가 과연 자격이 있는지 되물었다. 실력도, 정신도 여물지 못했다. 괜한 민폐만 끼칠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승선 기회가 또 온다면) A매치 출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훈련구 챙기고 바람을 넣고 빼야 하는 게 내 역할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