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놓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사나이’로 불렸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집권 7개월 만에 사퇴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20일 국영방송 ERT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에서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이 승인된 만큼 이후 10월부터 진행될 국제채권단과의 채무재조정 협상을 이끌려면 총선에서의 강력한 지지를 통한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가 그리스에 3년 동안 860억 유로(약 112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3차 구제금융안을 최종승인해 첫 분할금이 지급되자마자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선거를 위한 과도정부를 구성해 다음달 20일 조기총선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그리스는 이날 첫 분할금을 받아 상환기일에 맞춰 유럽중앙은행(ECB)에 34억유로(약 4조5천억원)를 갚고 파산을 면했다. 당초 그리스에서는 치프라스 총리가 9~10월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했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 13일 실시한 3차 구제금융 합의안 관련 표결에서 시리자 의원 149명 가운데 강경파 의원 43명(반대 32명, 기권 11명)이 반란표를 던져 연정 붕괴를 예고했었다. 치프라스 총리의 의회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졌고, 정계개편 없이는 앞으로 긴축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리자 내 급진파인 좌파연대를 이끈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전 에너지부 장관은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과 탈당해 총선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의 이번 조기총선 선언은 ‘1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라는 치밀하게 계산된 도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시리자의 지지율이 40%대로 2위인 신민주당보다 20%포인트 정도 앞서 치프라스 총리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리9대학의 코스타스 버고풀로스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 국민들에게는 치프라스와 시리자보다 나은 대안이 없다”면서 “국민들은 여전히 부패한 주류정당보다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치프라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유권자들이 새 총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급진좌파를 제외한 새 내각을 꾸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계산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치프라스 총리가 9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당내 반발세력을 잠재우고 ‘중도적 진보’ 지도자로서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을 강력하게 밀어부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