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3일 일요일 맑음. 내부계단. #172 Sufjan Stevens ‘All of Me Wants All of You’(2015년)
‘Carrie & Lowell’ 표지. 수프얀 스티븐스의 친모와 양부의 실제 사진이다.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를 처음 맨눈으로 봤던 어린 날, 그 주황색 잔상이 감은 두 눈 속을, 무덤같이 어두운 눈두덩 안을 유령처럼 떠다닌 것처럼.
미국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40)의 최근작 ‘Carrie & Lowell’은 존 레넌(1940∼1980)과 엘리엇 스미스(1969∼2003)의 망령이 떠도는 낡은 목조주택 같은 포크 명작이다. 선율들은 비틀스의 내성적 발라드 곡에 비견될 만치 아름답다.
슬픈 공포영화 같은 이 음반을 웬만하면 밤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보인다. 드럼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 통기타와 밴조 사이로 이따금 낡은 샹들리에 같은 전자음들이 유령처럼 명멸하는. ‘Should Have Known Better’의 중반부에 끼어든 코러스는 별세한 캐리의 현현 같다. 통기타 퉁기며 거실에서 노래하는 스티븐스의 원경으로 과거의 캐리가 싱크대 앞에 서 흥얼대는 환영이 음표의 커튼 사이로 일렁인다. 그 허깨비가 카메라의 초점 쪽으로 점점 도드라지면 악곡은 장조로 이행하고 마침내 무거운 전자음이 헤진 드레스 자락을 끌고 하향 선율로 내부 계단을 내려간다.
힘없이 읊조리는 스티븐스의 보컬은 자기 가슴팍에 칼날을 박아 자살한 스미스를 연상시킨다. 특히 ‘All of Me Wants All of You’의 반복적인 상향 선율이 스미스의 ‘Everything Means Nothing to Me’를 많이 닮았다.
레넌, 커트 코베인, 에미넘, 그리고 스티븐스…. 어떤 천재들은 모성의 부재를 원망하며 노래 속에서 아이가 됐다. 젖가슴 같은 소리의 무덤을 파헤치며 토한 주황색 울음. 분노 범벅인지 그리움의 곤죽인지 모를 것이 선실 안에 깜빡인다. 흔들린다. 주황색 필라멘트.
‘이 빛 속에서 당신은 포세이돈 같아./난 당신이 걸어서 통과해버리는 유령일 뿐…’ (‘All of Me Wants All of You’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