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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손영일]바꿔도 너무 바꾼다

입력 | 2015-08-24 03:00:00


손영일 경제부 기자

“이번에 바뀐 세법 규정이 몇 개나 될 거 같아?”

최근 만난 대학 후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다.

“20∼30개 정도 아닌가요? 기업들이 청년을 고용하면 세금을 깎아준다고 하던데. 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란 ‘만능통장’도 도입된다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론의 관련 보도가 내년도 세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청년고용 증대세제, ISA 등에 집중된 탓에 이 부분이 세법 개정의 대부분인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정부가 배포한 ‘2015년 세법 개정안 상세본’은 첫 번째 항목인 ‘청년고용증대세제 신설’부터 마지막 ‘지방세 특례사항의 지방세특례제한법으로의 이관’까지 총 211개 항목을 담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254개)보다는 다소 줄어든 것이다.

한국 세법의 잦은 변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30년 전인 1985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는 ‘세법, 바꿔도 너무 바꾼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뀌어 납세의무자인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인 변호사나 세무사들조차 제때에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 세정당국이 행정편의에 따라 ‘조령모개식’ 조세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30년 전 기사를 그대로 가져와 지금 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때보다 매년 바뀌는 세법 항목은 더 늘었다. 매년 200개 안팎의 세법 규정이 바뀌다 보니 ‘누더기 세법’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빈번한 세법 개정으로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기업의 재무회계 담당자들이다. 올해 적용되는 세법이 내년에도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기업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한 임원은 “한국의 법인세율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비과세·감면 제도 등이 워낙 복잡하고, 매년 세법이 요동을 쳐 본사에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라고 전했다.

정부로선 나름대로 세법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세제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어떤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경기가 급변하는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려다 보니 세법을 자주 바꿀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구체적인 검증 작업 없이 정치적 논리나 시류에 편승해 굳이 개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법에까지 손을 대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웬만해선 세법의 큰 틀을 바꾸지 않는다. 정책의 성패를 평가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미국을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과 같은 잦은 세법 개정은 비정상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30년 전 선배 기자가 썼던 표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세법, 바꿔도 너무 바꾼다.”

손영일 경제부 기자 세종=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