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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고속철 총기테러 막은 ‘맨주먹의 영웅들’

입력 | 2015-08-24 03:00:00

미국인 청년 3명-62세 영국인
AK소총 든 테러범 격투끝 제압… 554명 탑승 열차 참사 막아
범인은 IS서 훈련받은 모로코 출신… 경찰조사서 “나는 단순 강도” 주장




21일 오후 5시 50분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탈리스 고속열차 9364호. 미국 공군 소속 의료요원 스펜서 스톤 씨(23)와 대학생 앤서니 새들러 씨(22·새크라멘토 주립대 4학년)는 중학교 동창인 미국 오리건 주 방위군 소속 앨릭스 스칼라토스 씨(22)가 최근 9개월간의 아프가니스탄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휴가 여행 중이었다.

열차가 벨기에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을 즈음 12번째 칸의 열차 통로에 있는 화장실에 가려던 프랑스인 남성 승객이 AK-47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어깨에 메고 화장실을 나오던 무장괴한과 마주쳤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성은 곧바로 무장괴한에게 몸을 날렸다. 총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몸싸움 과정에서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이 깨치며 객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 발사된 총 한 발은 불행히도 승객 한 명의 목을 관통했다.

이 순간 스톤 씨와 스칼라토스 씨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그를 붙잡아(Go get him)”라고 외치며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스톤 씨가 10여 m를 뛰어가 무장괴한을 쓰러뜨린 뒤 목을 잡고 헤드록을 걸었다. 범인은 키 190cm,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대한 덩치에 유도 유단자인 스톤 씨에게 깔렸지만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격렬하게 저항했다. 스톤 씨는 머리와 목에 상처를 입었고 엄지손가락이 거의 잘려 나갈 정도로 다치면서도 침착하게 범인을 제압했다. 스칼라토스 씨는 괴한이 떨어뜨린 총을 빼앗아 던지고 머리를 가격했으며, 새들러 씨는 영국인 승객 크리스 노먼 씨(62·컨설턴트)와 함께 넥타이로 괴한의 팔을 묶었다. 진압 과정에서 총 4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총 554명의 승객이 탑승한 고속열차에서 자칫 ‘제2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참사’가 일어날 뻔했던 상황을 맨손으로 막아낸 3명의 미국인 청년, 영국인 승객, 프랑스인 승객이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CNN이 보도했다.

프랑스 검찰 테러전담반의 수사 결과 무장괴한은 모로코 출신의 26세 남성으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서 테러 훈련을 받은 아유브 엘 카자니(사진)로 밝혀졌다. 카자니는 21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고속열차 맨 뒤 칸에 올라탄 것으로 밝혀졌다. 탑승 당시 그는 AK-47 자동소총 1정, 독일제 루거 반자동 권총 1정, 탄창 9통을 지니고 있었다. 최소 200명을 살상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카자니는 체포된 뒤 경찰 조사에서 “나는 테러범이 아니라 승객들의 돈을 털려 했던 단순 강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자니는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두 차례 여행을 떠났다가 불과 석 달 전에 유럽으로 돌아와 범행을 준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카자니는 올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벨기에 동부 베르비에에서 테러 공격을 시도하다가 사살된 이슬람 극단주의자 2명과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는 이미 스페인 당국에 의해 DNA 정보가 등록돼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테러 용의자 리스트에 올려 1년 이상 주시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자니는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여행을 다니며 석 달에 걸쳐 범행에 쓸 무기를 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차역에서 금속탐지기 보안 검색도 받지 않았다. 프랑스 마뉘엘 발스 총리와 벨기에 샤를 미셸 총리는 22일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주요 기차역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스톤 씨의 어머니는 미국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총이 아들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고 범인이 두 번이나 총을 쏘려고 시도했다”며 “(총을 맞지 않은 것은) 신의 도움”이라고 말했다. 범인 체포를 도운 노먼 씨도 “나는 영웅이 아니다”라며 “어차피 죽는다면 코너에 몰려서 총에 맞아 죽느니 저항하다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괴한에게 달려든 이유를 설명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괴한을 진압한 승객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사를 막아낸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24일 파리 엘리제궁으로 이들을 초청해 사의를 표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몸을 아끼지 않고 괴한을 진압한 미군을 비롯해 승객들의 용기와 빠른 판단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