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권력 안정 급한 ‘최고존엄’ 金 권위 깨는 확성기 방송에 신경질적 北, 중단시키려 고위접촉 매달려
“대북 심리전 방송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어떻게든 심리전 방송을 중단시키려는 북한이 다급하게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면서 남북 고위급 접촉에 매달렸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포격 도발 이후 이틀간 집중된 북한군의 전쟁 위협은 실제 전쟁을 일으키려는 목적보다는 전쟁 공포를 조성해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심리전 중단을 관철하려는 압박”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이른바 ‘최고존엄 모독’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김일성-김정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력 기반이 취약한 만큼 3대 세습권력 안착이 절실한 탓으로 보인다. 이런 김정은에게 한국군의 전격적인 심리전 재개는 체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인식됐을 법하다.
우리 정부는 김정일이 살아 있을 당시였던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이후 확성기를 다시 설치했지만 북한의 조준타격 위협으로 실제 방송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북한 도발에 대해 최악의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대응에 북한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을 향해 충성 경쟁을 해온 북한 당·정·군 핵심 엘리트들은 심리전 중단을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다. 북한이 내놓은 각종 성명에 “제도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도 북한의 내부 사정을 보여준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말 전쟁을 준비했다면 이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급작스럽게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전쟁 드라마’를 과장해 연출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이전에도 최고존엄 모독을 빌미로 한 ‘도발 뒤 협상’ 행태를 보였다. 대선 직전인 2012년 10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임진각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한 뒤 한국군이 “원점 타격으로 대응하겠다”고 맞서자 비밀 군사 당국자 간 남북 접촉을 제안해 협상이 성사됐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지뢰 도발 이후 원칙을 강조하며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좋은 말만 한다고 대화에 나오는 게 아니라 심리전과 같은 실효성 있는 압박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