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호 9단 ● 박영훈 9단 본선 16강 5국 6보(93∼105)
흑은 상변에서 실리를 고스란히 내주며 그 대가로 흑 97부터 101까지 백 한 점을 때려내 흑 대마의 안정을 취했다. 일단 백의 공세에 숨죽여 참은 뒤 후일을 기약하겠다는 자세다. 백 102의 단수가 기분 좋다. 중앙을 두텁게 하면서 상변 흑에게 보강을 강요한다. 흑은 백의 요구대로 103으로 지킬 수밖에 없다.
국면의 흐름은 백의 뜻대로 척척 맞아떨어지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고삐를 죄면 결승선을 일찍 통과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백이 너무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자 방심의 싹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백 104의 빵때림이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방심의 그림자. 한없이 두터운 곳으로 백의 불안을 말끔히 씻어주는 듯하다. 그러나 흑 105가 놓이자 이창호 9단의 표정이 순간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