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스튜에 바게트 빵을 곁들여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김성규 셰프 제공
김성규 셰프
‘자, 이 정도 이른 시간이면 한산하겠지’라는 자신감으로 나선 길이었지만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마다 기나긴 차의 행렬이었다. 그 끝없는 행렬에 합류한 자에게 오로지 호젓한 분위기에서만 가능한 우아한 휴가란 시작부터 포기해야 마땅한 사치에 가까운 것일 테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는 어느 요리사의 말처럼 모처럼의 휴가에 맛집 체험이 빠질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여기서도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면 휴가지의 소문난 맛집이야말로 모처럼의 휴가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휴가철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방법은 과연 없는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직접 요리를 하라’는 것이다. 텐트 앞이든 숙소에서든 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을 끓여 먹어도 ‘맛집’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휴가를 떠나기 전에 휴가지에서 구할 수 있는 제철 식재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요리하는지 공부해가면 훨씬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역의 시장을 둘러보고 상인과 가격 흥정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될 게 분명하다.
내가 시도해 일행으로부터 ‘환상적’이라는 반응을 얻어낸 서양 요리 하나를 소개한다. 냄비 하나와 불만 있으면 되고 조리법도 초보자가 따라하기에도 크게 어렵지 않다. 토마토와 함께 뭉근히 끓여내는 문어 스튜다.
우선 가까운 항구의 활어회센터에 가서 살아 있는 문어 한 마리를 산다. 대형마트에서 숙회 문어를 사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시장에서 살아 있는 문어를 사는 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에 더 좋다. 속초 동명항의 시장에서는 1kg짜리가 3만 원이다. 동해 어느 항구의 시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1kg짜리면 세 명 정도 먹기에 충분하다.
이제 문어를 끓는 물에 데친다. 끓는 물에 바로 넣는 것보다 물을 적게 넣은 냄비에 문어를 먼저 넣은 뒤 서서히 끓이는 걸 추천한다. 10분 정도면 된다. 이미 삶은 숙회라면 이 과정은 필요 없다.
접시에 내고 바게트 빵을 잘라 옆에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손색없다.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양을 늘리려면 파스타 국수를 삶아 섞거나 그냥 라면을 끓여 섞어도 별미일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은 그저 쉽게 오지 않는다. 추억은 만드는 것이다.
※필자(44)는 싱가포르 요리학교 샤텍 유학 뒤 그곳 리츠칼턴호텔에서 일했다. 그전 14년간 동아일보 기자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푸드카 ‘쏠트앤페퍼’를 운영 중이다.
김성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