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
朴정부, 안보 관리능력 보여줘
박 대통령은 자칫 잘못될 수도 있었던 마라톤협상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함과 인내심을 발휘했다.
김정일 사망 이후 한국 국민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온 것처럼 보인다. 북한 붕괴론 신봉자들은 과거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남북통일은 분단이 가져온 모든 문제를 끝낼 만병통치약이라고 진정으로 믿는 듯하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한이 궁지에 몰렸을 때 한반도에 어떤 위험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 이제 한국 국민도 점차 깨달아가는 것 같다.
최근까지 ‘군사적 억제’의 논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북한이 향후 몇 년 동안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공약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북한이 붕괴하는 시나리오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는 결론을 내리는 순간 자제력을 발휘할 이유는 크게 적어지게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통일은 진정 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로 ‘대박’으로 판명이 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형태의 통일이 이뤄지고 남북한이 어떤 경로로 거기에 이르느냐’이다. 이 점에 대해 서울과 워싱턴의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선 생각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 많은 한국인은 박근혜 정부가 시작한 통일정책의 성공을 위해 지속적이고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의 대북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한 미국인들은 북한과 관여(engage)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국무부, 북한 문제에 피로감
미국 국민은 북한 문제에 대한 피로감에 젖어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의 정책 당국자들조차 북한과 다시 협상을 시도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의 거래는 정치적인 이득은 거의 없고 어렵기만 한 과제’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가끔 벌어지는 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북한 문제는 워싱턴의 외교정책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
한국이 현실적 대안 적극 제시해야
이번 위기 대응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의 중요한 안보 문제를 잘 다뤄 나갈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 모멘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좀 더 행동적인 미국의 동맹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를 위해 한미가 공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