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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유근형]아기를 낳고 싶다니

입력 | 2015-08-26 03:00:00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 요즘 추세 모르니. (중략) 아기를 낳고 나면. 그 애가 밥만 먹냐. 계산을 좀 해봐. 너랑 나 지금도 먹고살기 힘들어∼.”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온몸이 찌릿했다. 노랫말이 귀에 팍팍 꽂혔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을 알린 ‘중식이밴드’의 ‘아기를 낳고 싶다니’가 그랬다. ‘저출산’을 담당하는 복지담당 기자의 직업병일까…. 이 노래에 곧 중독됐다.

이 곡의 매력은 직언직설에 있다. 2000년대 말 취업준비생들을 위로했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가 다소 자조적이었다면, 중식이밴드의 외침은 미국 출신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분노를 연상케 한다. 출산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절망감이 “이제 더는 못 참겠다”라는 절규로 표출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의사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수장을 맡게 될 정진엽 장관 후보자이다. 정 후보자는 24일 인사청문회에서 복지 비전문가라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끝나자 기대감은 우려로 바뀌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정 후보자는 “잘 모르겠다” “공부하겠다” “확인하겠다” 등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청년들의 고통에 비해 주무부처 장관 후보자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해 보였다. 특히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이번 정권에서 단 한 번밖에 열리지 않아 유명무실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저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의 상황을 모른다는 건 현재 저출산 정책 진행의 기본조차 파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런 분이 정책을 진두지휘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원들의 질책이 쏟아진 이유다.

물론 저출산 문제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난제다. 하지만 어렵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준비된 리더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기에 더 철저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한국 축구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이영표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하는 무대가 아니라 증명하는 무대다”라는 말을 남겼다. 준비가 덜 됐다는 말이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장관직도 다르지 않다. “저는 복지에는 문외한이 맞다. 열심히 하겠다”는 겸손의 말은 인사청문회 단 한 번으로 족하다. 비전문가 장관을 기다려주기에는 복지정책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장관의 업무 파악이 늦어질수록 중식이와 같은 청년들의 절규는 더 커지고, 국가의 미래 성장엔진도 빠르게 식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