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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유승민 찍어내기’는 잘못”

입력 | 2015-08-26 15:45:00

[신동아 9월호/Interview]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정 苦言

● 대선 출마? 하늘의 뜻이라면…
● 여당의 국회법 개정안 표결 포기는 역사적 오점
● 유승민은 자기정치 하지 않았다
● 대통령 소통 부족? 자기 생각 못 바꾸는 것
● 박 대통령, 아시아경기대회 때 北 3인방 만났어야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댄디즘(Dandyism)을 정신의 자세로 격상했다. 참된 댄디는 속물적 사고를 경멸하고 미(美)를 동경하고 멋을 추구한다. 권력보다 예술에 취한다. 60대 후반에 사진전을 여는 정치인을 보며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다.

“질문이 왜 그거부터 나오지?”

다소 못마땅해 하는 말투였지만, 표정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8월 10일 오후, 국가의전서열 ‘넘버2’의 집무실은 분주했다. 보좌진도 많고 대기하는 사람도 많다. 한 무리의 방문객이 쏟아져 나온 후 약속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만났다.

사진이 취미인 정의화(67) 국회의장은 요즘 기분이 들떠 있다. 8월 7일부터 고향인 부산 해운아트갤러리에서 ‘정의화의 시선’이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대학(부산대 의과대) 졸업반 시절인 1972년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사진전이다. 9월 초엔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도 전시한다.

인터뷰에서 정 의장은 대통령 출마설에 대해 “유구무언”이라면서도 “천심이 민심”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세월호특별법 정부 시행령을 둘러싼 국회법 개정안 파동과 관련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여당의 ‘굴복’에 유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대통령의 집권당 원내대표 찍어내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유승민은 자기정치를 한 게 아니다”라며 유승민 전 대표를 감쌌다. 정 의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비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또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주문하자 굳이 피하지 않았다(그의 보좌진은 사전에 기자에게 “대통령 관련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진정한 소통은 남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인데 이 점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었다. 아울러 ‘통일 대박’이 대변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내년 총선 때 호남에서 출마하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19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왔다. 떨어지더라도 이름값을 올려 대통령에 출마하라는 조언이었다. 하나의 전략이라고 할까. 그런데 난 그런 정치적 전략이나 술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최근 부산 노컷뉴스가 또 그런 내용을 보도했다. 팩트가 아닌 걸 상상해 쓰는 건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난 전혀 그런 생각을 한 적 없다.”

“호남 출마? 생각한 적도 없다”

▼ 누군가 정 의장을 견제하려 만든 얘기일까.

“나를 지역구(부산 중·동)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본 게 아니니 예단할 순 없고….”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금배지를 단 그는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5선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 평소 지역화합을 강조해온 데다, 여수와 광주 명예시민증도 갖고 있지 않나.

“전북 명예도민증, 세종시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 경상도 출신 정치인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뭐, 그런 점도 작용했겠지. 하지만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이 중요하다. 명예시민증 갖고 출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역구를 떠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 의장 물러난 뒤에도 지역구에서 출마하겠다는 얘긴가.

“그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출마한다면 지역구에서 나올 거라는 뜻이다.”

▼ 정치적 무게로 보면 대통령 출마도 생각할 만하지 않나.

“유구무언. 내 처지에서 그런 얘길 한다는 게 맞지 않다. 지금으로선 의장 일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 대권 유혹에 빠지면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사실 정치인의 마지막 꿈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처음 국회의원 할 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내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대의민주주의국가에서 국회의장은 대통령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다. 그 이상 욕심을 내는 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대통령 출마설에 명확히 선을 긋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이어진 얘기는, 의례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천심이 민심이다. 하늘의 뜻이라면 출마할 수도 있겠지. 다만 내가 의도적으로 나서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책임정치 막는 국회선진화법

화제를 국회선진화법으로 돌렸다. 2012년 5월 이 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할 때 국회의장 직무대행이던 그는 강력히 반대했다. ‘무기력 국회’ ‘식물 국회’가 된다는 우려에서였다.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된 후 여당 단독으로 주요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게 힘들어졌다. 재적의원 5분의 3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 종종 편법으로 사용되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도 엄격히 제한됐다.

“과거 국회가 국민의 불신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입맛에 맞는 법을 통과시키는 거수기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에서뿐 아니라 김영삼·김대중 같은 의회민주주의 신봉자들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비슷한 양태를 보였다. 선진화법의 취지는 좋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다수당이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진정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중시하는 수준 높은 국회라면 모르겠지만. 그 후유증으로 (법안) ‘끼워 팔기’가 나타났다. ‘이거 안 해주면 저거 안 해준다’고 나오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이 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법이 통과되면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회에서 정부를 뒷받침해주기 힘들다”고 진언했다.

▼ 당시 박 대통령의 반응은?

“뭐가 문제냐고 하더라. ‘60%(5분의 3) 규정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으니 황우여 원내대표를 불러 물어보고 잘 판단하시라’고 했다.”

▼ 지금도 여당 일부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의 장점을 주장하는데.

“100가지 중 서너 가지가 도움이 되겠지. 지난해 12월 2일 새해 예산을 법정처리시한 내에 통과시킨 것을 두고 선진화법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다. 자랑 같지만, 국회의장의 강력한 의지가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6월 국회와 청와대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둘러싼, 이른바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충돌했다. 5월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은 정부의 시행령이 법 취지에 어긋날 때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는 권한을 강화한 것이다. 국회의장의 중재로 일부 문구를 수정해 정부로 이송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여당은 재의결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통령 뜻을 따랐고,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

‘요구’와 ‘요청’ 사이


▼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여당 간에 큰 싸움이 났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마무리됐는데, 입법부 수장으로서 그 사태를 어떻게 보나.

“법에 다 담을 수 없으니 시행령을 만든다. 이를 두고 정부에서 행정입법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어폐가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입법권을 가진 곳은 국회뿐이다. 행정부는 입법을 요청하는 권한이 있을 뿐, 입법권을 가진 게 아니다. 모법 취지에 어긋나는 시행령을 만드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다. 당연히 국회에서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강제성이 있으면 위험하다’며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커졌다. 나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이 문제로 다투는 건 나라에 이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개정안 문구 중 ‘(국회의)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자는 안을 제시했다. ‘요구’라는 표현에는 다소 강제성이 있지 않나. 그걸 완화한 것이다. 물론 ‘요구’라고 해서 꼭 들어줘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 국회의장으로서 원만하게 중재하려 한 건데, 결국 여당의 굴복으로 모양새가 우습게 돼버렸다.

“나는 대통령께서 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재의 요구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의장은 본회의에 부의(附議)해야 한다. 그럼 다시 투표해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여당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회의장에 들어왔다가 그냥 나갔다. 당론이 바뀌었다면 투표로 부결하면 되지 않나. 나는 이것도 역사적 오점이라고 본다. 뭐 이런저런 걱정을 해서 그랬겠지만….”

6월 25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석상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방침을 밝히면서 여야를 싸잡아 비난했다. “배신의 정치”니 “국민의 심판”이니 하는 거친 표현이 국민의 뇌리에 박혔다. 이날 발언의 압권은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에 대한 ‘성토’였다.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자기정치를 한다”는 취지로 강한 불신과 배신감을 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날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은 두 가지가 뒤섞였다. 국회법 개정안과 유승민 대표에 대한 부분이다. 두 가지를 확실히 구분했다면 국민이 쉽게 이해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 좀 복잡하게 됐다. 유 대표 부분은 안타깝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그 정당의 의원총회에서 선출한 원내대표를 대통령이-실질적으로 당 총재 격이라 하더라도-찍어내기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정당이나 의회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이 아쉽다.”

▼ 우리 정치 수준을 10년 전, 20년 전으로 후퇴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몇 년 후퇴한 건지 내가 말하긴 곤란하다. 아무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

▼ 유승민 전 대표가 ‘자기정치 한다’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국회의원이 자기정치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조직 속에서 같이 움직여야 할 때 튀면 안 되겠지만.

“자기정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조 기자께서 말했다시피 정치인이 자기정치 하지 남의 정치하는 건 아니잖은가.”

“원래 자기 목소리 내온 사람”


▼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지 않나.

“그렇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정치하는 데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은 조국과 국민이다. 그 다음에는 당의 이익이다. 그 다음에 자기 개인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정치를 한다는 말에는 나라나 당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함의가 담겼다. 대통령 시각에서 보면, 자신이 비서실장, 비례대표도 시켜주고, 지역구 보궐선거에 나가게 해주고 선거 때 자주 가서 도와주고 했는데, 원내대표가 된 후 보인 언행이 자신의 뜻과 상반되니 섭섭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자기정치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

▼ 의장께서는 유 전 대표가 자기정치를 했다고 보나.

“부정적인 의미의 자기정치를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이다. 비서실장 하면서도 모시는 분의 생각이 자기 뜻과 맞지 않으면 건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매우 좋은 후배로 지켜봐왔다. 아마도 재선된 후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과 경제민주화 등 경제정책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한 듯싶다. 보수에서 중도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정치인 유승민이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힌 거지 자기정치를 한 건 아니라고 본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직후) 곧바로 사과한 걸 보면 박 대통령에게 반발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대통령 뜻과 상반되는)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는 발언 때문에 그렇게 볼 소지도 있다. 그런데 그건 경제학자로서의 시각이니 같이 의논하다보면 좋은 정책을 도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가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숙이면서 ‘칭찬 들을 줄 알았는데 꿀밤 맞았다’고 말한 걸 보면 악의나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런 것은 아니라고 나는 이해한다.”

언젠가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통화하고 싶어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부각하는 차원에서 꼽은 사례이지 않았나 싶다. 이에 대해 묻자 정 의장은 “행사장에서 만날 때마다 대화하고 전화도 더러 한다”고 했다.

▼ 주요 현안이나 쟁점이 있을 때도 대화하나.

“그건 아니다. 주변에 자문에 응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나한테까지 그럴 건 없지 않겠나.”

▼ 사람들은 대통령의 대표적 약점으로 소통 부족을 꼽는다.

“대통령께서 소통의 폭을 넓히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소통이란,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일리가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태도다. 자주 만나고 듣는다고 소통은 아니다. 아무리 많이 만나고 잘 들어도 자기 고집만 부린다면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흡한 구석이 있다.”

“나 같으면 무조건 만났을 것”

▼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민주적 리더십과 안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이 그걸 모를 리 있겠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을 18년간 했는데. 그 나름 노력하는 걸로 안다. 임기 절반이 지났으니 뭔가 변화를 주려 할 것이고, 난 거기에 기대를 건다.”

그는 “대통령이 잘한 점과 잘못한 점 하나씩 꼽아달라”는 질문에 “입법부 의장으로 답하기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답하길 원한다”고 하자 마지못한 듯 에둘러 답변했다.

“대통령이 정말 잘해야 한다. 대통령이 성공하는 건 나라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여러 가지 개혁을 얘기하는데, 대통령이 당사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청와대에도 불러 의견을 들으면 좋겠다. 그런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남북관계도 그간 많은 노력을 했지만 좀 더 능동적으로 나서면 좋겠다.”

▼ ‘통일 대박’에 대해 구호만 요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의장께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정책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아는데.

“젊은이들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 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다. 통일 대박은 ‘대박’이라는 유행어를 빌려 통일이 우리나라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걸 강조한 표현이다.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드레스덴 선언도 좋았다. 그런데 북이 안 받아줬다.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사전에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난해 9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막 직전 북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세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나. 그때 대통령과 그들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다. 나 같으면 무조건 만났을 거다. 만나서 그들의 얘기도 듣고 우리의 진의도 전달하고 식사도 대접하면서 민족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게 아쉬웠다. 그렇게 서로 다가서야 드레스덴 선언도 빛을 볼 수 있다.”

▼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점을 죽 찍으면 선이 되고 선을 죽 이으면 면이 된다. 남북이 다양한 경로로 교류하면 통일의 기반이 형성된다.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나라가 될 거다. 남북 지도자와 국민이 이런 생각을 가슴에 품도록 정치인들이 노력해야 한다.”

▼ 북한을 방문할 계획은 없나.

“지난 제헌절에 최고인민회의 측에 남북 국회수장 회의를 제안했다. 아직 공식 답변이 없는데 더 기다려보다 한 번 더 얘기하려 한다.”


▼ 정부 차원에서는 막혔으니 국회가 나서서 푼다면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2가지는 사회통합과 남북통일이다. 이를 정부에만 맡기는 것은 난센스다. 국회가 나서서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첫 단계가 남북 국회수장 회의이고 다음이 남북 국회 회담이다. 이를 토대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좋겠다.”

그는 북한을 ‘블루오션’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경제가 한계에 달했다. 고부가가치 산업도 더는 경쟁력이 없고 중국이 바싹 따라온 상태다. 일자리는 갈수록 적어지고 젊은이들은 3D 업종을 꺼린다. 어디서 탈출구를 찾겠나.”

“대통령 되는 것보다…”

▼ 스스로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나.

“나는 보수가 뭔지 진보가 뭔지 모른다. 다만 중용을 중시할 뿐이다. 주변에서 나보고 ‘중도의 정치를 한다’고들 한다. 원불교 종법사로부터 ‘중산(中山)’이라는 호를 받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용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여와 야의 대화를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배운 건 아니고 천성이 그렇다. 의사들이 대체로 그렇듯 나도 보수주의자이지만, 복지나 사회적 약자, 사형제도 등에 대해선 진보적 생각을 가졌다.”

▼ 여당 일부에서 ‘야당 앞잡이’라고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그래서일까.

“앞잡이는 무슨…. 야당의 좋은 정책은 여당이 받아들여야 한다. 언제 여야가 뒤바뀔지 모른다. 정당 정책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 최근 ‘롯데 사태’로 재벌 체제의 문제점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제정의 혹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하다보니 재벌의 문제점을 안게 됐다. 경제민주화의 첫째 과제는 빈부 격차에 따른 양극화 해소다. 애들 키울 때 가장 나쁜 것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다. ‘조현아 사태’도 있었지만, 재벌 2, 3세의 문제점도 바로 그것이다. 어릴 때부터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가르쳐 중소기업 일자리를 뺏는 짓 따위는 못하게 해야 한다.”

기사에서는 줄였지만,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 및 공정사회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다지 전문적이거나 논리적이진 않았다.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만 오랫동안 보수정당에 몸담아온 그가 진보적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의대 출신인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20여 년간 의사로 활동했다. 의료법인 정화의료재단을 만들었고, 지금도 병원을 갖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묻자 그는 “북한에 병원을 짓고 싶다”고 했다.

“남북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되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 국회의원으로서 20년이나 국록(國祿)을 받고 국회의장까지 지냈으니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북한에 병원을 짓고 우리 병원 의료진을 보내 치료해주고 의료교육도 해주고 싶다. 그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 대통령 되는 것보다는 그게 더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울 것 같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