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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의 시사讀說]박 대통령 중국 전승절 참석의 明暗

입력 | 2015-08-27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중국이 9월 3일을 전승절로 지정한 것은 바로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임위원회에서다. 전승절은 70주년을 앞두고 급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에서 전승절이었지만 1949년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1955년부터는 군인절(군인의 날)로 바뀌었다.




때론 과거 묻지 말아야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제2차 대전의 전승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대국으로 굴기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덴티티의 기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뒤로 치워뒀던 전승절을 부활한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일본과 싸운 연합국의 주역은 미국 영국 중국이었다. 그래서 1943년 카이로선언, 1945년 포츠담선언의 당사자도 이 세 나라였다. 카이로선언에 한국을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들어갔고 포츠담선언에 계승됐다. 한국의 독립이 포함된 것은 기본적으로 국제연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던 장제스의 도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달리 온전한 전승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할 당시 광대한 영토를 일본에 빼앗긴 상태였고 중국이 지배하던 곳마저 장제스의 국민군과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양분해 다투고 있었으니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다. 중국이 한국의 광복에 무슨 실질적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장제스를 몰아내고 들어선 마오쩌둥의 중국은 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와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다. 한국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가야 할 이유는 별로 없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확실하다.

그럼에도 외교란 때로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묻어둬야 할 때가 있다. 지난 70년 사이 중국의 대표 주자는 중화인민공화국, 한반도의 대표 주자는 한국이 됐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전승절 행사 참석자들을 공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앞서 첫 번째로 거명했다. 서방 국가 정상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참석이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에서 조롱받는 세습국가 북한의 지도자보다는 종전 이후 가장 성공한 한국의 지도자가 와주는 것이 중국이 지향하는 전승절 이미지에 부합한다.

최근 남북 대치 국면에서 우리 군은 확성기에 대고 박 대통령은 중국을 3번이나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틀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북한이 도발로 전승절 행사를 망치려 한다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김정은의 집권과 박근혜의 집권이 겹치는 기간에 마치 쇼트트랙 게임에서처럼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북한을 추월하는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가 롱트랙에서도 지속될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지속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美日에 비칠 인상 걱정


다만 일본은 중국의 굴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에 무임승차한다는 인식을 가진 대선 후보가 의외의 인기를 얻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서서 중국 인민군의 열병을 하는 사진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던질 것이다. 그 이미지를 완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면 우리가 얻는 것 못지않게 잃는 것도 적지 않을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