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순례단,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가다]<上>방치된 日 사적지 열사들 순국한 형무소 터… 주택가 놀이터에 덩그러니 때로 얼룩진 비문 읽을 수도 없어… 2·8독립선언 장소는 아직 확인 못해 日정부 정보 비공개에 자료 조작까지
24일 일본 도쿄 신주쿠 ‘이치가야 형무소’ 옛 터의 위령탑 앞에서 순례단원들이 이봉창 의사를 비롯해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력이 무색하게도 위령탑은 주택가 쓰레기 분리배출장 옆에 외로이 놓여 있었다. 도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방치된 재일 독립운동 사적지들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국가보훈처,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2030세대 독립과 미래창조 순례’에 참가한 순례단원들은 24, 25일 이봉창 의사의 순국 터를 비롯해 도쿄 곳곳의 항일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았다. 대부분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에 비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일부는 실제 발생지의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의 사적지도 형편은 비슷했다. 독립선언문이 작성된 옛 재일본 한국YMCA 건물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재일 유학생들이 두 차례 독립선언을 외치려다가 경찰에 붙잡혀 좌절됐던 장소도 히비야(日比谷) 공원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순례단은 어쩔 수 없이 독립선언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과 새로 지어진 YMCA 건물 옥상에 있는 기념관을 방문한 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순례단을 이끈 오영섭 연세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여기까지가 국내 연구진이 자체 노력으로 밝힐 수 있는 한계이고,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선 일본 정부의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항일 독립운동의 사적지가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의거 장소는 일제가 조작해 발표했다는 연구 결과마저 있지만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 후손들에 의해 간신히 명맥 유지
25일 일본 도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본부를 찾은 순례단이 학도의용군 출신 이봉남 씨와 독립유공자 후손 정해룡 씨, 재일 학도의용군 부회장 유재만 씨(앉아 있는 사람 왼쪽부터)에게 감사 편지를 건넨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순례단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서 활동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정해룡 씨(81)와 재일 학도의용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이봉남 씨(96)를 만나 광복 전후 재일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전해 들었다. 정 씨의 부친은 1923년 도쿄에서 항일결사 ‘흑우회’를 조직했다가 옥고를 치른 고 정찬진 선생이다. 정 씨에게는 아버지 품에서 살포시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나 보면 조직 활동을 위해 나가시고 없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 있다.
정 씨를 비롯한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YMCA 앞에 2·8독립선언 기념비를 세워 당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순례단 임제준 수경(22·제주해경)은 정 씨와 이 씨에게 편지를 전달하며 “일본 내 독립운동 사적지가 이만큼이라도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한 재일 한국인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도쿄=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