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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불꽃’도 못세우는 한국

입력 | 2015-08-27 03:00:00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8월의 주제는 ‘國格’]<163>세계 곳곳 ‘꺼지지 않는 불꽃’




동아일보DB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에는 매일 오후 6시 반이면 정복 차림의 노병(老兵)과 수많은 시민이 모여든다. 개선문 밑에 안치돼 있는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사진)에 새롭게 점화하고,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푸른색, 흰색의 꽃을 헌화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다.

유럽의 각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에는 늘 전쟁과 관련한 기념물이 조성돼 있다. 현충탑 같이 큰 것으로부터 시작해 벽이나 바닥에 설치된 작은 기념판까지 다양하다. 영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5만4000개의 전쟁기념물이 영국 내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파리의 개선문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인 개선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상 ‘전쟁기념관’임을 알 수 있다. 개선문 내벽에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정복전쟁 시대에 활약했던 660명의 프랑스 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외벽에는 수많은 역사적 전투 장면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개선문 바닥에는 2004년 5월 프랑스군의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도 설치됐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부인인 재클린 여사는 남편이 묻힌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파리 개선문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캐나다 오타와 국회의사당 광장,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광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도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한 불꽃이 설치돼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무명 용사 무덤’도 영국을 방문한 각국 수반들이 화환을 바치는 명소다. 영국은 1920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격전지 중 하나였던 벨기에에서 발굴한 영국군 무명용사를 왕실 성당 웨스트민스터 정문 바닥에 안치했다.

한국에서도 충무공 동상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꺼지지 않는 호국보훈의 불꽃’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수없이 제기됐으나 여론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나라를 위해 꽃다운 젊음과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희생을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늘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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