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어제 8·25 남북 합의의 이행을 밝혔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파국에 처한 북남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라고 평가하며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꿔가야 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앙군사위 일부 위원을 해임하고 조직개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 관련자 문책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북 회담 이후 합의 사항을 이행하자는 뜻을 처음 공식화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6개 항의 합의 가운데 북의 유감 표명, 준전시상태 해제 및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의 세 가지는 이미 이행됐다. 김정은의 이행 의지가 분명하다면 당국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도 가능하다. 혈맹관계라던 중국이 강한 압박으로 돌아서고 한미동맹이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북은 자신들의 유일한 출구가 남북관계 개선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갖게 됐을 것이다. ‘전쟁의 먹구름을 밀어냈다’는 그의 발언에서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 위기를 넘긴 데 안도하는 김정은의 본심이 드러난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번 8·25 합의가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가능했다면서 ‘군사력 강화’를 재차 강조했다. 대화는 해도 핵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어제 노동신문도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우리와의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밝혔다. 북-미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도 진전될 수 없다는 기존 주장의 되풀이여서 과연 북이 달라졌는지 의심스럽다.
8·25 타결 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15%포인트 급등한 49%로 한국갤럽 조사 결과 나타났다. 우리 국민은 협상이 잘됐다고 평가하면서도 ‘북이 합의를 지킬 것’이라는 반응은 17%에 불과할 만큼 신중하고도 현명하다. 박 대통령도 임기 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거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성과를 내겠다고 서두를 일이 아니다. 핵을 움켜쥔 김정은에게 현금과 시간만 벌어주지 않도록 치밀한 대북전략 검토가 필요하다. 김정은이 바꾼 것은 대남 전술이지, 적화통일이라는 전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