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도쿄의 거리에서/가토 나오키 지음/번역 모임 서울리다리티 옮김/
292쪽·1만9000원·갈무리
27세 때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 화가 가야하라 하쿠도가 남긴 스케치. 군과 자경단원에 의해 살해된 조선인들의 시신이 즐비하다. 동아일보DB
물론 ‘미친’ 소리다. 당시 이 같은 유언비어로 조선인 6000여 명이 일본 민간 자경단과 군대, 경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그러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당시 조선인이 실제로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의 방화로 일본인 몇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등의 글이 인터넷에 무더기로 나온다.
오늘날에도 일본 극우 단체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은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인을 내쫓아라”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쳐 죽여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혐한 시위를 벌인다.
책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인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읽다 보면 평범한 인간들의 잔혹함에 좌절하게 되지만 희망이 생기는 대목도 있다. 학살의 광기로부터 조선인 이웃 2명을 지킨 마루야마 마을 주민들 이야기, 살해당한 조선인 엿장수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한 맹인 안마사의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는 학살 원인을 3·1운동 등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을 보고 일본인들이 느낀 공포에서 찾는다. 조선인의 분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이 유언비어와 학살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흉악범죄의 주범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등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한국 내부에도 없지 않다. 이 역시 우리가 저질러 놓은 차별과 착취에 대한 공포의 반영이 아닐지. 책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우리 내부의 편견도 돌아보게 만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