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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걱정 덜고, 맘편히…” 안전경영, 생산성 향상의 길

입력 | 2015-08-31 03:00:00

[안전이 경쟁력이다]



중국 톈진 항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사고는 안전이 산업활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12일 중국 톈진(天津) 항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사고로 28일 현재 139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폭발로 물류창고에 보관돼 있던 유독물질이 톈진 항 주변에 퍼지면서 환경 재앙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폭발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안전불감증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독물질을 규정보다 과다하게 보관한 정황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는 산업 활동에서 안전이 최우선이 되지 않을 경우 얼마나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되고 있다.

톈진 항 폭발사고는 안전경영 되짚는 계기

한국 기업들도 톈진 항 폭발 사고를 계기로 안전경영 고삐를 다시 죄고 있다.

삼성전자는 제조 현장에서 설비 노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수명 예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안전규정 준수와 사업장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정기 안전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잠재 위험요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개선대책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번 톈진 항 폭발 사고와 유사한 형태의 유해화학물질 누출, 환경오염, 화재폭발 등의 사고를 가정한 비상사태 시나리오를 이미 구축해 놓은 상태다.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정기적 훈련을 통해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체계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있다.

환경 안전에 대한 임직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환경 안전 전문가를 육성하는 교육체계를 수립하기도 했다. 환경안전 인력을 대상으로 환경, 안전보건, 방재 등 3개 분야 24개 직무과정을 개설해 전문 역량 향상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울산, 아산, 전주, 화성, 소하리, 광주 등 국내 모든 사업장에서 생산 현장 안전 지표인 ‘안전보건경영시스템 18001’ 인증을 획득했다. 이를 기반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장별로 점검 및 사고 예방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사고 예방 및 대처 매뉴얼도 쉽고 명쾌하게 재정비하고 있다. 관련 직원들이 매뉴얼 내용을 잘 숙지하도록 반복 교육시키고 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 공장에 안전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해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작업장 내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이고 운전자 안전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형 버스 무상 점검 서비스, 여성 운전자를 위한 교육, 어린이들을 위한 교통 안전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안전 환경에 관한 문화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다.

정유회사인 GS칼텍스는 폭발사고를 가정한 소방연습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왼쪽 사진). 삼성전자도 안전사고 대응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소방기술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각 회사 제공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챙겨

단 한 번의 안전사고가 회사의 존폐와 직결될 수 있는 정유회사인 GS칼텍스는 허진수 부회장부터 앞장서 안전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허 부회장은 5월 창립기념사에서 “사소한 과정이라도 중요하게 살피며 완벽을 기하는 안전관리는 다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기본가치”라고 말했다. 주요 임원들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세이프티 퍼스트 리더십’을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예기치 않은 화재 발생 시 최단 시간에 화재를 진압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요원 190명이 4개 교대조로 대기하고 있다. 또 각종 소방 장비를 비롯해 화학소방차, 소방차, 방재선, 소방정 등도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5월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설치한 ‘특별 안전 점검단’을 주축으로 2017년까지 3년간 ‘안전경영’에 총 407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안전과 관련한 전문 인력도 내년까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전 구성원의 강력한 의지와 관심을 통해 안전에 대한 경영 철학을 다시 세워 안전 최우선 경영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의 필수조건 안전경영

글로벌 기업들 중에는 안전경영을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곳이 많다. 1906년 미국 철강업이 불황의 늪에 빠져들 당시 US스틸 게리 사장은 “생산제일이 아니라 안전제일”이라고 선언했다. 현장에서 부상당하는 근로자가 증가하는 것이 회사의 경영성과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안전을 앞세우면 생산이 줄고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경영방침을 바꾼 뒤 생산성은 향상되고 제품 품질은 오히려 좋아졌다. 이후 US스틸의 최우선 덕목은 안전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사업장’으로 꼽히는 미국 듀폰도 안전경영의 대표적 회사다. 듀폰의 안전경영 역사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듀폰은 이때부터 쌓은 안전관리 역량을 1970년대 들어 아예 비즈니스로 발전시켰다. 듀폰 안전보호사업부가 자사 사업장의 안전을 위해 제작했던 각종 안전장비를 외부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내 안전 전문가들은 다른 기업으로 가 안전관리 컨설팅도 하고 있다. 지난해 듀폰이 안전사업 부문에서 번 돈은 약 4조 원에 이른다.

동종 업계 최저 사고율을 자랑하는 오티스 엘리베이터(오티스)의 ‘2진 아웃’ 제도도 엄격한 안전 기준의 한 사례다. 오티스 직원은 모든 작업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안전 수칙을 한 차례 위반하면 최소 일주일간 정직을 당한다. 2박 3일 일정으로 안전 아카데미에 들어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두 번째 안전 수칙을 어긴 직원들은 2진 아웃 제도에 의해 즉시 해고될 수 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