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원 산업부 차장
다음 날 둘러본 한옥마을은 다른 의미로 예상을 벗어났다. 예스러운 멋이 감돌던 전날 밤과는 달리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활기가 거리에 넘쳤다. 경기전과 전동성당 사이 큰길에서 관광객들은 저마다 길거리 음식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전주는 맛에 관한 한 DNA가 남다른 고장이다. 길거리 음식이라고 해서 무시할 일이 아니다. ‘통 오징어 튀김’이나 ‘완자꼬치’, ‘임실 치즈 닭꼬치’ 같은 색다른 메뉴가 관광객을 사로잡았다. 수제 초코파이와 바게트 햄버거, 비빔밥 크로켓(고로케) 같은 다양한 간식거리도 맛볼 수 있었다. 전주 특산인 모주(母酒)에 빨대를 꽂아 거리 음료로 파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전주 한옥마을에서 ‘꼬치구이 퇴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 꼬치구이가 위생상 좋지 않을 뿐 아니라 한옥마을의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여론을 수렴한 뒤 다음 달 이 지역 약 20개 꼬치구이집의 퇴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퇴출이 가능한 근거는 ‘한옥마을 지구단위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한옥마을에는 패스트푸드 가게가 들어올 수 없다. 외국계 브랜드의 무분별한 진입을 막아온 장치다.
문제는 ‘과연 꼬치구이를 패스트푸드로 규정할 수 있는가’이다. 전주시는 꼬치구이가 패스트푸드인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문의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할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꼬치구이가 한옥마을의 전통 보존에 걸림돌이 되는지, 또 위생적으로 유해한지 등을 종합해 전주시가 판단할 문제가 됐다.
이 논란을 보며 지방 도시의 작은 명소에도 중앙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 공식’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어쩐지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장래를 내다보기보다는 당장의 여론을 의식하는 점도 규제 공식이다. 이른바 동반성장이 화두이던 2011년 정부는 막걸리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막걸리가 해외에서 한류 먹을거리 열풍을 일으키던 시기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그 열풍을 주도하기를 기대했지만 실상은 대기업이 손을 떼자 시장 자체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내수와 수출이 모두 줄었다. 결국 정부는 올해 대기업의 막걸리 사업을 다시 허용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풍남동 일대의 한옥 보존지구가 한옥마을로 지정돼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당시 30만 명이던 연간 방문객은 올해 615만 명(예상치)까지 늘었다. 한옥 숙박업소도 70개가 넘는다. 특유의 길거리 음식 문화를 빼고 전통만을 강조해왔다면 한옥마을이 이만한 성장을 이뤘을지는 의문이다.
전주 한옥마을의 길거리 음식들은 규모는 작아도 저마다 독특한 창의성으로 그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확보한 신생 메뉴들이다. 기업으로 따지면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인 셈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벌어지는 패스트푸드 논란이 성장할수록 각종 고정관념과 규제에 부닥치는 벤처기업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것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