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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본인부담 없다”며 10만원 영양제 처방… 과잉진료 부추겨

입력 | 2015-08-31 03:00:00

[3000만 가입 실손보험 축난다]과잉진료-의료쇼핑 실태




인천에 거주하는 직장인 안모 씨(28)는 올해 4월 목이 아파 인천의 한 척추전문병원을 찾았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목에 디스크 증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실손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비용 부담도 없으니 신경성형술을 받으라”고 권했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안 씨는 보험 처리를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날 바로 시술을 받았다. 시술 전 적외선 체열검사, 3차원 인체측정검사 등 각종 비급여(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항목) 검사도 받았다. 병원비 250만 원 중 20여만 원은 건강보험 처리가 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됐고, 나머지 230만 원 중 자기부담금 23만 원을 제외한 207만 원을 보험사에서 보험금으로 돌려받았다. 하지만 2주 후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안 씨는 “보험금이 나오니 공짜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너무 쉽게 결정했다”며 후회했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 처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고가의 진료를 쉽게 선택한다. 일부 병원은 가입자들이 보험사로부터 진료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비싼 진료를 권하거나 진료비를 부풀려 청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5997억 원 중 966억 원이 허위·과다 진료로 받아낸 보험금이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기로 드러난 금액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실손보험과 관련된 과잉진료 금액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 과잉진료 부추기며 건보 재정까지 위협


작은 키가 고민이던 여중생 A 양(15)은 ‘자세가 비뚤면 키가 안 큰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부모와 함께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A 양의 부모에게 “자세를 바로잡기 위한 진료는 실손보험으로 보장이 안 되지만 허리에 통증이 있어 진료를 받은 것으로 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A 양은 30회의 도수치료를 받고 보험사에 보험금 600만 원을 청구했다. 일부 병·의원에서 얼굴 피부를 하얗게 해준다며 놔주는 ‘아이유 주사’나 원기회복을 위한 비타민 주사인 ‘마늘 주사’ 등도 치료 목적으로 받았다며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손보사 보상담당자는 “원가가 5000원도 되지 않는 영양제를 처방해주고 10만 원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실손보험으로 보장이 된다며 권유하는 병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손보험의 과잉진료는 건보 재정에까지 부담을 준다. 통상 병원 진료비는 건보공단이 부담하는 진찰료 등 급여 진료와 실손보험이 보장하는 비급여 진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과잉진료로 병원비가 늘어날수록 급여 진료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손보험으로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의료쇼핑과 의료비 고액화 등의 부작용도 커졌다. 산부인과 의사 김애양 씨는 “과거 촉진만으로 진단하던 병들을 최첨단 장비로 확진하는 게 관례로 굳어졌다”며 “이런 서비스에 익숙해진 환자들도 빨리 검사 결과를 알고 싶어 비싼 비급여 검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병원들은 앞다퉈 MRI 등 고가 장비를 들여놓고 있다. 감사원은 올해 4월 의료서비스에 대한 감사에서 “불필요한 비급여 검사로 의료자원 과잉 공급에 따른 낭비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

국민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비 청구가 적절한지 심사한다. 하지만 실손보험은 민간 영역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감독권 밖에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제때 지급하는지, 보험사의 재정 건전성이 위험하지는 않은지 등을 감독할 뿐, 실손보험 보험금 지급을 위한 심사는 보험회사의 몫이다.

보험사는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진료 명세서와 진료비 영수증 등의 자료를 받아 보험금을 지급해도 될지, 얼마를 보상해야 할지 심사한다. 보험금 청구 후 3일 이내에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어 허위 과다 진료를 걸러내기 쉽지 않은 구조다. 가입자가 보험금을 안 준다며 금감원 등에 민원을 내는 것도 부담이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금 5만 원 때문에 민원을 받기보다 돈을 줘버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의료업계는 무리하게 보험을 팔아온 보험사가 문제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보험사들이 심평원에 보험금 지급심사 문제를 위탁하자고 계속 주장하는데, 이는 정부기관을 이용해 손해율을 낮추겠다는 의도에 불과하다”며 “처음부터 상품을 무리하게 설계하지 않았는지, 광고 등 과잉 마케팅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양측의 의견을 조율해 실손보험이 보장하는 비급여 의료 행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이미 실손보험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손보험을 감독할 제3의 기구를 설립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은 “객관적으로 비급여 의료 행위를 심사할 주체가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꼭 심평원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제3의 민간 기구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 여러개 가입해도 중복보상 안돼… 단독-특약형 혜택 꼼꼼히 살펴야 ▼


보험 가입때 유의사항은


몇 차례 병치레로 의료비 부담을 실감한 직장인 A 씨(32)는 지난해 말 온라인의 한 실손의료보험 비교 추천 사이트를 찾았다. 이 중 괜찮아 보이는 상품을 골라 무료 전화상담을 한 그는 전문 설계사의 현란한 설명을 듣다가 월 2만7000원 수준이라는 상품에 덜컥 가입했다.

하지만 뒤늦게 손해보험협회의 실손보험 비교공시를 확인한 A 씨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자기 나이를 입력한 뒤 단독형(진료비만 보장받는 상품) 실손보험의 보험사별 보험료를 확인해보니 월 1만 원 안팎으로 더 낮았기 때문이다. 이미 가입한 보험은 그에게 필요하지 않은 기타 보장들이 추가된 ‘특약형 보험’이었다.

최근 실손보험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정작 본인에게 알맞은 상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특히 설계사들은 진료비만 보장해주는 ‘단독형’보다 수술비, 진단비 등 다양한 특약이 붙는 특약형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암보험 등 다른 의료 관련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보장이 충분하지 않다면 특약형 가입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이미 한두 가지 보험에 가입한 상태라면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한 단독형 실손보험을 선택하는 편이 유리하다.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지만 실손의료보험은 실제 나온 의료비만큼만 보장해주기 때문에 여러 개에 가입해도 보상금 총액은 늘지 않는다. 일부 보험회사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판매할 때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실손보험 중복 가입자는 23만여 명이다. 의외로 자신이 가입한 보험 명세를 모르는 가입자들도 많다. 생명보험협회나 손해보험협회, 보험개발원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보험 가입 여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보험료 인상에도 주의해야 한다. 실손보험은 대부분 갱신형이며 대체로 1년 또는 3년마다 위험률(건강 상태를 토대로 추후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추산한 비율)을 다시 반영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갱신 주기가 3년인 상품은 3년 동안 연령 증가, 손해율(낸 보험료 대비 실제 지급된 보험금의 비율) 변동 등을 반영해 보험료를 결정하기 때문에 갱신 주기가 1년인 상품보다 보험료가 한꺼번에 더 크게 오를 수 있다.

도영숙 한국소비자연맹 부회장은 “갱신형 상품인 만큼 처음 가입할 때만 보험료를 따져볼 게 아니라 나중에 얼마나 오를지 알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기 minki@donga.com·유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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