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노사정 인식차] 대-중견-중소기업 30곳 긴급 설문
우려 섞인 기업들의 속내는 31일 동아일보가 대기업 및 중견·중소기업 3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노동유연화로 기업경쟁력 강화를 기대하는 기업과 비정규직 해소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꿈꾸는 노동계, 최대 현안인 청년실업 해소를 목표로 하는 정부의 바람은 서로 엇박자를 냈다. 이번 설문조사는 개별 기업으로서는 민감한 답변이 될 수 있어 익명을 원하는 기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 노사정 ‘핵심 이슈’ 두고 ‘동상이몽’
그러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넉 달여 만에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면서 이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장 조합원들의 우려가 큰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은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노사정이 생각하는 핵심 이슈에 차이가 있다 보니 정부가 밝힌 것처럼 올해 안에 노동개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이번 설문에서도 7곳(26.9%)만이 정부가 밝힌 것처럼 올해 안에 노동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10곳(38.5%)은 ‘내년 4월 총선 이전’이라고 응답했다. ‘대통령 임기 안에 끝내기 어렵다’고 보는 곳도 4곳(15.4%)이나 됐다.
○ 임금피크제로 일자리 늘까
재계는 임금피크제로 아낀 인건비로 청년고용을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국내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여기서 아낀 재원으로 2016∼2019년에 18만2300여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기업 인건비 부담이 26조 원 절감돼 청년 일자리 31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계산 방식은 근로자가 60세까지 일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피크제의 이익을 계산한 것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근로자의 상당수가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설문에 응한 한 대기업 임원은 “노동계가 임금피크제 등을 양보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청년고용의무제를 도입해 노동계와 타협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임금피크제와 저성과자 해고 등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는 있으나 청년 일자리 확대로 직접 이어지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청년 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일-학습 병행제’를 통해 중견·중소기업 간 인력 미스 매치를 해소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노동개혁의 근본 취지 살려야
노동개혁을 이뤄내려면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시각과 노사정의 공감대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정부가 시간에 쫓겨 자칫 산업구조 개편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개혁의 근본 취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일부 기업은 노동계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정부가 인기영합주의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정부의 선심성 정책은 오히려 노사정 합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은 “노동개혁의 취지는 주요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인적 역량을 제고해 선진 경제구조를 갖추는 데 있다”며 “교육이나 금융, 규제부문 등 다른 구조개혁과 결합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서동일·정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