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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고성호]시간만 낭비한 ‘빈손 정개특위’

입력 | 2015-09-01 03:00:00


고성호·정치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선거구 획정기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정치권은 개혁하는 시늉에 그쳤다.

일단 내년 4월 총선 룰을 정해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최대 인구 편차(2 대 1)를 벗어나는 60개 선거구를 조정할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국회에서 독립시켰다. 획정위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기구로 두면서 여야가 선거구 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란 점에서 개혁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야 간사는 지난달 18일 의원정수를 현행(300명)대로 유지하는 한편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획정위에 일임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간사 합의는 공직선거법심사소위에서 의결되지 못했다.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강력히 반발한 탓이다. 정개특위는 활동기한(31일)이 끝났지만 당분간 명맥은 유지하게 됐다. 법사위에 제출한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될 때까지 유지한다는 국회법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상 힘은 빠졌다. 이제 공은 여야 대표의 담판으로 넘어가는 형국이다.

결국 남은 정치 일정은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개특위가 선거구 획정기준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이 기준으로 선거구 조정 작업을 해야 할 선거구획정위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구획정위가 국회에 획정안을 제출해야 하는 법정시한(10월 13일)도 사실상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여야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 등을 놓고 또다시 옥신각신하는 동안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이어지면 졸속 협상은 불가피하다. 총선 직전까지 협상을 끌다가 내년 4월 13일로 이미 날짜가 잡힌 총선을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슬그머니 서로의 이해관계에 맞게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개혁의 방향”(새정치민주연합), “자당의 이익을 위한 주장”(새누리당)을 외치며 벌이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쟁에 깔린 속내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정개특위의 초라한 모습에서 당리당략을 최우선시하는 정치권의 민낯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고성호·정치부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