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 원인은 ‘안전 뒷전’ 용역 계약
31일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68)는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휴가를 즐겼어야 할 아들 조모 씨(29)는 차디찬 병원 영안실에 누워 있었다. 조 씨는 8월 29일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부딪혀 숨졌다. 아버지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얻은 외동아들이었다.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났지만 서울메트로와 용역업체 모두 ‘우린 책임이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2인 1조’ 업무 수칙을 지키지 않은 용역업체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용역업체 관계자는 “움직일 때마다 보고를 하고 인력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조 씨가) 그런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씨의 아버지는 “전날까지만 해도 (용역업체에서) 모두 자신들의 책임이라며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아들 책임이라고 하니 당황스럽다”며 울먹였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부터 경비 절감을 이유로 열차 경정비를 용역업체에 맡겼다. 1∼4호선 151개 역의 스크린도어를 용역업체인 유진메트로컴(24개 역)과 은성(127개 역)이 나눠 관리한다.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관제센터에서 용역업체에 연락을 한다. 역 한 곳에 대기 중인 정비 인원은 평균 1.5명. 통계대로면 역에 따라 1명만 대기하는 곳도 있다는 얘기다.
서울메트로와의 계약 조건 때문에 용역업체 직원들은 안전수칙을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서울메트로 노동조합에 따르면 신고 접수 뒤 1시간 이내에 출동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4시간 내 해결’이 조건이다. 열차 운행이 일정 시간 늦어지면 배상 책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용객의 민원 신고가 반복되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수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하철 운행 시간이 아닐 때 수리하면 된다”는 서울메트로의 주장이 현실 속에서 지켜지기 어려운 이유다.
서울메트로의 비정규직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용역 계약이 끝나는) 2015년 3월부터 정규직화하겠다”고 했지만 완전 정규직화는 2017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노지현 isityou@donga.com·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