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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배기식 대표 “홍보 브랜드보다 제품이 우선”

입력 | 2015-09-01 20:00:00


배기식 리디북스 대표는 한국의 창업자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고객을 우선시하는 치열한 벤처기업의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리디북스 제공

“우선 기존 보다 10배 이상 뛰어난 제품을 만드세요.”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난 전자책업체인 리디북스의 배기식 대표(36)는 최근 창업에 나선 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조언한다. 창업경진대회의 심사나 자문위원 자격으로 만난 초보 창업자들이 “홍보나 마케팅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하면 배 대표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소문이 빨리 퍼지는 세상에서 정말 뛰어난 제품은 하루만에도 입소문이 퍼져 소비자들이 찾는다”며 “제품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홍보 마케팅과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이 사업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배 대표의 철학은 리디북스가 전자책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데도 큰 영향을 줬다. 소프트웨어(SW) 기반의 정보기술(IT)회사로서 2009년 전자책 시장에 뛰어든 리디북스는 소비자들에게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했다.

기존 업체가 콘텐츠를 단순히 온라인에 유통시켰다면 리디북스는 업계 최초로 독자 성향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와 밑줄을 그어 메모하는 기능, 음성으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 리디북스는 180만 명의 회원과 36만 종의 전자책을 서비스하면서 지난해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홍보 브랜드보다 제품이 우선”


서울대 전기공학부 출신의 배 대표는 2006년 삼성전자 벤처투자팀에 입사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를 목격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국내에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새로운 창업 기회가 올 것으로 봤다. 그는 “본격적으로 디지털화가 되지 않은 분야를 찾다가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전자책 시장에는 기존 종이책을 불법 스캔한 ‘디지털 암시장’이 존재했다. 기존 출판사들이 모여서 만든 전자책 업체도 있었으니 배 대표가 이른바 ‘퍼스트 무버(초기 진입자)’는 아니었다.

배 대표는 기존 업체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벤처기업으로서의 성장 비전을 제시하며 우수한 개발자들을 데려왔다. 초기에는 출판사들을 설득해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출판업계와 전혀 인연이 없던 제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출판사 700여 곳을 돌며 200곳과의 협력관계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 대표가 무조건 열정만으로 열심히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출판사의 상당수가 전자책 시장도 기존 오프라인처럼 몇몇 업체가 독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며 “신생기업이 새로운 유통채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자 기존 출판업체 분들이 콘텐츠 제공에 동의해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치열한 벤처생태계 배워야

리디북스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하면 전날 올라온 고객의 불만을 검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배 대표는 항상 직원들에게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우리의 서비스를 보면서 움직이는 고객 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저한 고객 중심의 경영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보고 배웠던 영향이 컸다. 잔인할 정도로 철저한 능력 중심의 문화와 고객과 투자자에게 회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곧바로 사라지는 벤처 생태계를 목격한 것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자유롭고 화려한 분위기를 동경하는 한국의 젊은 구직자들이나 창업자들에게 ‘쓴 소리’도 했다. 배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의 직원들이 반바지를 입고 개를 데리고 출근해도 회사에서 상관하지 않는 것이나, 높은 복지수준은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잡기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아니라 냉정하고 치열한 분위기를 한국의 창업자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리디북스는 올해 10월경 약 6인치 크기의 화면에 e잉크(전자잉크) 디스플레이를 탑재한‘리디북스 페이퍼’라는 새로운 독서전용 단말기를 출시한다. 새 단말기는 좌우로 페이지를 넘기기 편리하도록 ‘페이지넘김버튼(물리키)’이 들어가 책 읽기에 최적화돼 있다. 디스플레이는 300ppi(인치당 픽셀 수)급의 고해상도로 종이와 같은 느낌을 준다.

배 대표는 “전자책 시장이 커지려면 단말기와 콘텐츠의 궁합이 맞아야 한다”며 “기존에 나온 전용 단말기보다 우수한 제품을 선보이면 전자책 시장도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