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에서 ‘화평굴기(和平¤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추구해 온 중국이 예술 분야에서도 굴기하고 있다. 여전히 중화(中華)를 강조하는 대규모 관제 예술 공연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한편에선 그런 정부에 냉소적이고 세계적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현대 미술도 베이징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중국 예술의 폭과 관용도가 점차 넓어지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중국 청더(承德) 시의 ‘정성왕조(鼎盛王朝) 강희대전(康熙大典)’ 야외 공연장은 평일인데도 3000명을 수용하는 객석이 가득 찼다. 좌우로 100m가 넘는 대형 무대에 조명이 켜지자 기마병들이 수십 명씩 무리 지어 달리다가 원을 그리며 황제 앞에 도열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에 온몸이 긴장될 정도였다.
경기문화재단 ‘신 연암로드’ 탐방단과 함께 관람한 이 공연은 청나라의 융성기를 이끈 강희제의 업적을 다뤘다. 공연은 규모로 관객을 압도했다. 작은 야산 전체를 무대 배경으로 사용했고, 말 130여 마리와 지역 주민을 비롯한 배우 400여 명이 투입됐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선전(深¤) 시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대형 공연이 잇따라 생겨났다고 한다.
반면 지난달 25일 방문한 베이징 차오양(潮陽) 구 헤이차오(黑橋) 촌의 ‘오십육도 예술구(五十六度 藝術區)’에서는 정부에 냉소적인 작품도 발견할 수 있었다. 헤이차오 촌은 베이징 내 대표적 빈민촌이었으나 베이징 올림픽 이후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져 물류창고와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예술가 스튜디오 등이 들어선 곳이다.
수묵이나 판화 등 전통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주로 만드는 쑨쉰(孫遜·35) 작가의 작업실에는 해학 넘치는 드로잉들이 가득했다. 그는 2010년 중국현대미술상(CCAA)을 받고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중국 현대미술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애니메이션 ‘용년왕사(龍年往事·용의 해에 일어난 일)’는 공산당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현수막 아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관중의 항의가 묘사됐고, 조소에 이어 환멸에 가득 찬 흐느낌 소리로 마무리됐다.
2012년 쑨쉰 등 중국 젊은 미술 작가의 작품 전시를 기획한 임종은 큐레이터는 “반체제 성향의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한때 가택 연금되는 등 중국 정부는 현대 미술을 불온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작가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더·베이징=조종엽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