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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天安門 열병식장, 김정은의 빈자리

입력 | 2015-09-02 03:00:00

朴대통령 지지율 상승… 국가 위기 시 ‘국기 주위로 결집’ 효과
톈안먼 광장에 나란히 선 시진핑 푸틴 박근혜
中서 남에 밀린 북한의 위상 추락




황호택 논설주간

8·25 남북 합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에 근접하면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 위기 시에는 국민 통합의 구심체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정치학자 존 뮐러는 이를 ‘국기 주위로 결집 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라고 명명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39%의 지지율로 바닥을 기다가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무려 51%포인트나 치솟아 90%를 기록했다.

단기적 인기 상승이 곧 지도자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1982년 자국에서 670km 거리에 있는 영국령 포클랜드를 침공해 점령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정치 혼란, 인권 침해 같은 내부 문제를 잠재우기 위해 포클랜드전쟁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이 본토에서 1만2000여 km나 떨어진 섬을 되찾기 위해 무력을 동원하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마거릿 대처 총리는 전쟁을 개시해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 초기 아르헨티나 군부와 마거릿 대처 모두 양국에서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이 전쟁의 결과로 아르헨티나는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간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에게 “우리는 ‘한 발’을 쐈는데 36발씩이나 쏘나”라고 항의하듯 말했다. 북이 쏜 것은 ‘두 발’인데 황병서는 ‘한 발’이라고 줄여서 말했다. 북한군은 고사포 한 발과 직사포 한 발을 쏘았는데 황병서가 군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직사포는 에누리하고서 한 발언일 수 있다.

그들은 연평도를 공격했다가 응징 포격을 당하고 이번에 36발을 얻어맞으면서 우리 포의 정확도와 위력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이다. 남북 양쪽에서 포격전이 벌어지면 우리 쪽의 피해도 없지 않겠지만 공군기까지 나서면 북의 완패는 불문가지다. 이런 상황을 포병 병과가 전공인 김정은은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군의 포 성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대형 스피커가 40개 연결된 초대형 확성기를 맞히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북한군이 확성기를 직접 겨냥하지 않고 위협용으로 야산에 두 발을 발사한 것은 우리 포병의 일제포격과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확성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고, 포격전을 피한 것은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다.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한 연설을 뜯어보면 전면전에 대한 공포가 배어 있다. ‘우리 조국 앞에 닥쳐왔던 위기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위험천만한 사태가 평정됐다’ ‘민족의 머리 위에 드리웠던 전쟁의 먹구름을 밀어내고 조선반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했다’ 같은 발언은 그동안의 호언장담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은은 평화의 집에서도 황병서를 시켜 확성기를 제발 꺼달라고 사정하는 치욕을 당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혈맹인 중국 외교에서 남쪽에 밀렸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의 전승절 열병식장 주석단에서 시진핑의 왼쪽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른쪽에 박근혜 대통령이 앉고, 북을 대표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뒷줄로 밀려난 모습은 오늘날 중국과 남북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이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볼지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번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갖춘 외교다. 한국이 일제 35년 강점하에서 중국과 함께 싸운 역사도 있는 데다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지렛대를 쥐고 있는 중국과의 긴밀한 정상외교를 미국도 이해할 것이다.

김정은이 베이징에 안 가는 것이냐, 못 가는 것이냐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중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못 간다’는 해석이 더 맞다고 본다. 북한은 러시아 전승절 때도 김정은에 대한 특별한 대접을 요구했지만 러시아가 받아들이지 않자 가지 않았다. 미국과 신형 대국(大國)관계를 지향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고 도발을 자행해 남북관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두통거리다. 북한이 계속 ‘몽니’를 부려도 계속 ‘오냐, 오냐’ 하던 중국이 아니다. 미숙한 김정은이 비무장지대(DMZ)와 베이징 톈안먼광장의 치욕을 치욕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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