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못 보는 해양 정책과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굴러들어온 복도 못 챙기면서 ‘관광 부산’을 외친다는 게 우습지 않습니까.”
지난달 29일 오전 7시 컨테이너가 산더미처럼 쌓인 부산 남구 감만부두. 컨테이너 전용 부두인 이곳에 초호화 크루즈선인 ‘퀀텀 오브 더 시스호’가 입항하자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국격의 문제”라고 말했다.
인천항을 통해 국내 처음 들어온 퀀텀호는 역대 부산항 입항 크루즈선 중 최대 규모. 세계 2위 크루즈선사인 미국 로열 캐리비언 인터내셔널(RCI) 소속이며 16만7000t에 길이 348m로 전 세계 크루즈선 중 3번째 크기다. 18층 높이에 2090개의 객실과 카지노 면세점 등을 갖춘 바다 위의 특급호텔이다.
하지만 한국에 처음 온 예양밍(葉陽明·57·여) 씨는 “도시는 아름다운데 배를 타고 내리는 곳의 풍경은 아쉽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온 셰수(謝恕·42) 씨는 “깨끗한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도시의 첫인상이 컨테이너 야적장이라 삭막했다”고 말했다.
퀀텀호가 입항하기 3일 전 감만부두에서 가까운 부산항 북항재개발지구에는 2334억 원을 들여 지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 개장했다. 그러나 퀀텀호는 새 터미널 이용이 불가능했다. 터미널 길목에 놓인 부산항대교의 높이가 60m로 크루즈선 높이 62.5m보다 낮았기 때문. 앞으로 부산항을 찾는 높이 60m 이상 크루즈선은 새 터미널을 이용할 수 없는 구조다.
이는 크루즈선의 대형화 추세를 예견하지 못한 해양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물론 지난해 개통한 부산항대교의 설계가 먼저였지만 2, 3년을 내다보는 눈만 있었어도 다리 높이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난이 일자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부산항의 또 다른 크루즈선 터미널인 영도구 동삼동 터미널에 400억 원을 투입해 부두 확장공사를 벌일 계획이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형국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일본행 대신 임시로 부산항에 왔지만 관광 행정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부산시 관계자는 1명밖에 없었다. 부산관광협회와 부산관광공사 실무자 몇 명만 비지땀을 흘렸다.
‘사람과 기술, 문화로 융성하는 부산’을 슬로건으로 내건 부산의 명품관광은 구호만으로 안 된다. 부족하더라도 정성을 다하고, 혜안(慧眼)이 있어야 돌아선 관광객의 발걸음도 되돌릴 수 있다.
조용휘·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