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살리는 내고장 전통시장]<2>성남 남한산성시장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남한산성시장 생선가게 앞에서 손님이 남한산성시장 공동쿠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시장 고객은 물건을 사면 주는 이 쿠폰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 남한산성시장은 공동쿠폰제를 성남시에 있는 시장 중 처음으로 도입했다. 성남=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남한산성시장의 차서방 생선가게 앞. 저녁 찬거리로 쓸 생선을 찾던 50대 주부가 마음에 드는 고등어를 고른 뒤 2500원짜리 상품권 두 장을 내밀었다. 차인태 사장(43)은 “아이고, 우리 단골이시네. 시장에 앞으로도 자주 와 줘요”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차 사장은 5000원짜리 고등어 한 손을 내주고 주부로부터 상품권을 건네받았다. 차서방 가게에는 하루 평균 손님 10명이 상품권을 들고 찾아온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상품권으로 된장찌개에 넣을 바지락을 사가기도 하고, 자녀 간식을 해준다며 오징어 서너 마리를 가져가기도 한다. 차 씨는 “상품권을 내민 손님도 즐거워하고 파는 나도 즐겁다”며 신이 나서 말했다.
○ 대형마트 못지않은 시스템 갖춘 골목시장
남한산성시장은 축구장 넓이의 약 1.3배(9240m²)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골목시장이다. 하지만 이 작은 시장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못지않게 내실 있는 운영을 하고 있다.
기자가 시장을 찾은 날은 오후에 비가 내려 인적이 뜸할 법했지만 마주 보는 점포 간 3m 사이에서 손님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종종걸음을 걸어야 할 정도로 북적였다. 이 시장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1만 명이며, 전체 148개 점포에서 올리는 연 수익은 280억 원이다. 불과 1.9km 떨어진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남한산성시장에도 위기는 있었다. 2009년 시장의 주요 고객들이 살던 중원구 은행동 일대에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된 것. 이 사업으로 약 1만 명의 주민이 이곳을 떠났다. 시장 상인들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했다. 상점들을 특화하고 공동 마케팅에 힘을 쏟았다.
남한산성시장의 마케팅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시장은 지난해 11월 백화점에서나 있을 법한 ‘고객감사 대잔치’ 행사를 열었다. 5만∼10만 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냉장고나 주방용품을 탈 수 있는 경품권을 지급하는 행사였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걷기대회를 열어 관련 참가비를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전체 고객 중 단골 고객의 비율이 주중 평균 44.31%나 된다. 전체 고객 중 70%가 20∼40대 젊은 고객층인 것도 남한산성시장의 자랑거리다.
시장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반찬전문점 ‘찬찬찬’에는 조선시대 고을 수령인 사또 복장을 한 배득영 사장(남한산성시장 상인회장)의 캐릭터가 그려진 패널이 있다. 이 패널에는 배 사장이 군 생활을 마치고 반찬전문점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현재 3대까지 이 가게를 이어 오고 있다는 내용이 배 사장의 캐릭터와 함께 담겨 있다. 배 상인회장은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들이 스토리텔링 캐릭터를 보면 좋아하고, 다른 손님들도 상인들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한산성시장 곳곳에는 상인과 주민들을 더 밀접하게 해주는 재밌는 스토리텔링이 살아 숨쉰다. 상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캐릭터 표현은 각각의 점포를 특성화하겠다는 시장 상인회의 의지가 담긴 작업이다. 시장을 걷다 보면 과거 골목길에서 노점상을 하다 힘들게 가게를 차린 상인의 사연, 평범한 회사원에서 친척의 권유로 시장 상인이 된 사연 등도 캐릭터와 함께 볼 수 있다.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남한산성시장의 아이디어는 또 있다. 남한산성시장은 지난해와 올해 시장 안 점포 6곳을 초등학생들에게 내주며 ‘나는 CEO’ 행사를 열었다. 학생들이 직접 팔 물건을 구상해 점포에 진열하고 실제로 팔아보는 체험 행사였다. 미래의 손님인 어린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자리였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남한산성시장은 하반기에는 참가 대상을 중학생으로 범위를 넓혀 체험행사를 열 계획이다. 배득영 상인회장은 “전통시장이 위기라는 말이 많지만, 전통시장은 기본적으로 품질이 좋고 값이 싸기 때문에 상인들이 힘만 합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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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시장 생선가게에 진열된 해물꼬치. 시장에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아 이곳을 오가는 남한산성 등산객에게도 인기가 많다. 남한산성시장 제공
시장 이름이 처음부터 남한산성시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에 성남은행골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시장은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같은 해 4월 시장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남한산성을 테마로 특화 시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였다. 중장기적으로는 문화관광명소형 시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등산객 신성우 씨(62·서울 강북구)는 “시장에 있는 음식들이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서 남한산성을 올 때는 남한산성시장을 꼭 들른다”고 말했다.
등산객 고객을 모으기 위해 시장상인회는 식도락 패키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등산객들이 등산을 시작하기 전 시장에 들러 등산하면서 주전부리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가고, 다시 하산길에 집에서 먹을 찬거리를 사갈 수 있도록 체계화된 특화상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상인회는 등산객들이 이미 만들어진 반찬거리 등을 등산가방에 담아 갈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의 용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닭강정, 홍어회무침, 가오리찜, 해물꼬치, 떡 등을 특화상품으로 등산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시장 닭강정은 지난해 11월부터 상인회가 논의를 거쳐 시장의 대표 브랜드 상품으로 선정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등 마케팅도 적극 펼치고 있다. 김성인 남한산성닭집 사장은 “전국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없을 맛”이라며 “손이 모자라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배득영 상인회장은 “식도락 패키지 사업을 펼치기 위해 시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위생”이라며 “남한산성 등산객들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질 좋은 음식을 먹으러 많이 찾아와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남=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