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테아 인시그니스와 고사리는 화장실에서도 잘 자란다. 식물의 자생지를 파악하면 그 식물에 적절한 장소를 찾아줄 수 있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모든 식물은 자신들이 타고난 환경, 즉 자생지가 있다. 이 환경은 그 식물이 태어난 배경이면서 가장 몸에 맞는 장소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모든 식물이 자생지에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식물들이 자생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이건 식물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다. 식물들은 씨앗을 맺어 독립된 생명체가 된 후에는 가능한 한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대부분의 씨앗이 잘 굴러가도록 둥글게 만들어진 것도 부모 그늘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 스스로가 아닌 다른 동물이나 인간에 의지해 자생지를 떠나는 사례도 많다. 심지어 인간을 따라 북반구, 남반구를 넘나들고 수십, 수백 km 떨어진 머나먼 타국살이도 하게 된다. 결국 정원에서는 대부분의 식물이 낯선 환경에 놓이는 셈이다.
자생지를 떠나 맞지 않는 날씨와 환경 속에서 자라면 생존에 성공하지 못하는 식물이 많다. 원예 전문용어로 ‘식물의 한계점’이라는 게 있다. 자생지를 떠난 식물이 아무리 애를 써도 살지 못하고 죽는 지점을 말한다. 이 한계점 중에 가장 대표적인 요소가 온도다. 예를 들면 따뜻한 지방이 원산지인 식물이 추운 곳에 옮겨졌을 때 겨울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온도가 한계점이다. 멕시코 인근이 자생지인 달리아와 열대 기후를 좋아하는 칸나, 대나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추위 속에서 잘 자라는 자작나무는 여름에 더이상의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한계점이 온다. 국내에서는 대략 대전 밑으로는 자작나무가 자라기 힘들다.
정원사들의 일은 이렇게 힘겨워하는 식물의 한계점을 파악해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기도 하다. 겨울 추위에 약한 식물은 뿌리를 따뜻하게 덮어주거나 혹은 캐내어 따뜻한 곳에 보관해둔 뒤 다음 해 봄, 추위가 사라졌을 때 다시 심어준다. 습기에 약한 식물은 물 빠짐이 좋은 모래를 보강해서 빠르게 건조해지도록 도와주고 바람에 약한 식물은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줄 장치를 설치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물의 자생지 환경과 비슷한 곳을 찾아주는 일이다.
이 원리를 정원에 적용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유명한 여성 정원사인 베스 채토이다. 그는 정원에 심을 수 있는 식물을 가뭄에 강하거나 그늘을 좋아하거나 물가에 심을 수 있거나 숲 속에서 자랄 수 있는 등으로 습성에 따라 나눴다. 결론적으로 그는 정원사가 무엇을 특별하게 해주기보다는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내 식물 스스로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예 기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핵심이 하나 있다. 이런 원예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식물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식물을 심을지,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 이렇게 식물을 알고 나면 이제 정원에서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 심어주면 된다.
바깥과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지만 실내 환경에서도 이런 구분이 반드시 있다. 실내에서 잘 자라주는 식물이라고 해도 실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제라늄은 실내에서도 햇살이 잘 드는 창가를 좋아한다. 반면 고사리는 강한 햇살보다는 잎이 촉촉해지는 습기가 많은 환경을 더 좋아해 화장실이 더 적합한 환경이 된다. 아는 만큼 이해되고 이해한 만큼 도울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만큼 서로 행복해지는 삶! 그게 꼭 식물과의 관계만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와도 딱 이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