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
한국에 와서 처음 겪어보는 일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도 많았다. 하루는 집 근처 대형 마트에 들러 물건을 사고 집에 가고 있는데 남편이 마트 들렀다 집에 가는 길이냐며 길 건널 때 조심하라고 휴대전화를 했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봐도 남편은 없었다. 내가 마트에서 집에 가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일찍 퇴근해 나를 따라오고 있나 싶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회사”. 카드회사에서 남편 휴대전화로 결제 메시지를 보내준 것을 몰랐다. 카드회사가 그런 서비스도 하나? 백화점에 갔을 때는 현관 앞에서 예쁜 유니폼을 입고 손을 흔들며 미소로 반갑게 인사하는 젊은 여직원들을 처음 보고 뭐하는 사람들인가, 또 왜 그러나 싶기도 했다. 몽골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다. 우선 물건을 살지 말지 아직 모르는데 반갑게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건 값을 물어보는데 잘 대답을 안 하는 가게도 많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옷차림새가 반드시 물건을 살 것처럼 보이는 손님이나 외국인한테는 말투가 약간 달라진다. 백화점을 가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처럼 입구에서 인사하는 직원이나 주차요원을 별도로 고용하는 친절함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육류를 파는 곳에서는 고기 종류가 왜 그리도 많은지. 다양한 부위별로 고기를 파는데, 육류가 주식인 몽골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다. 시식 코너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수박을 삼각뿔 형태로 조금 잘라 미리 보여주는 것은 봤어도, 고기를 구워서 먹게 해주는 발상은 그때는 참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몽골식으로 얘기하면, 살지 안 살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왜 고기를 먹어볼 수 있도록 해주는가 말이다.
시식코너가 당연하게 보이고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보고도 사지 않고 돌아설 수 있게 되자, 머리가 하고 싶어졌다. 당시 울란바토르에서 제일 유명한 미용실 중 하나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울미용실’이었다. 한국에서는 더 잘할 것 아닌가. 몇 년 더 젊어 보이고 예뻐질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아파트 옆의 미용실에 갔다. 두 시간에 걸친 작업의 결과를 거울에서 확인한 순간, 커다란 배움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잘하는 미용실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곳에 가라고 한 남편의 말을 믿은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뭐든지 설명하고 가르치는 데 발군의 관심과 능력을 가진 남편이 많은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여자가 결정해야 할 일도 있다는 사실을.
※이라 씨(38)는 몽골 출신으로 200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2010년부터 4년간 새누리당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다문화여성연합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