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신 소비자경제부 기자
기업을 세운 창업주와 창업주 2세. 둘 중에 하나의 인생을 택하라면 솔직히 2세가 더 끌린다. 거창하게 10대 그룹이 아니어도 좋다. 항상 손님으로 붐비는 회사 근처 북엇국집에 가면 동료들은 종종 ‘이런 식당 물려받으면 인생이 얼마나 편할까’라는 말을 한다.
재벌인 창업주가 자신을 이을 2세에 대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다. ‘혹독한 경영 수업을 시켰다’는 말이다. 거짓말이 아니라도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리 혹독해도 결과는 정해진 수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과가 정해진 수업을 듣는 2세들에게 바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바로 알아서 잘해주는 것.
그 박탈감을 키우는 것은 재벌 2세들의 실망스러운 인식과 행동이다. 롯데그룹에서 발생한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볼썽사나운 싸움이었다. 무엇보다 분쟁 과정에서 나타난 재벌가(家)의 인식은 대중의 기대와는 동떨어졌다. 직간접 고용 인원이 35만 명에 이르는 그룹을 단순히 가족의 소유물로 여기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우리 회사의 주인은 고객이십니다’라는 롯데백화점의 사시(社是)가 무색했다. 국민들은 여전히 ‘롯데의 국적은 어딘지’만큼이나 ‘롯데의 주인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혹자는 재벌 2세를 가리켜 ‘검증받지 않은 권력’이라고 칭한다. 검증받지 않은, 검증받았으면 그 자리에 있지 못할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분명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재벌 2세들은 자신에 대한 시선이 가혹하다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도 많다. 한 재벌 2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과 사진을 올릴 때마다 수백 개의 ‘좋아요’ 버튼이 눌리고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린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재벌 2세와는 일면식이 없는 이들이다. 재벌 2세가 방문한 식당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입은 옷은 금세 동이 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명 우리는 재벌 2세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관심을 애정으로 가꾸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지위에 걸맞은 행동과 책임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