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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미분양… 3.3㎡당 1000만 원 깎아 팔기도”

입력 | 2015-09-05 03:00:00

[토오판 커버스토리]뜨거운 아파트 시장… 분양상담사의 72시간




부동산 시장 일각에서 “분양 열기가 내년에는 식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올가을 건설사들의 분양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아파트 본보기집에서 상담사들이 청약을 고민하는 고객과 상담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사는 회사원 최일석 씨(37)는 최근 한 아파트 분양회사에서 여러 차례 전화를 받은 뒤 그 번호를 ‘스팸번호’로 등록해 받지 않고 있다. 최 씨는 올봄 경기 광주시에서 분양한 아파트에 청약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분양회사는 “회사 특별보유분을 선착순으로 계약한다”며 2, 3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특별보유분이라고 하지만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기려는 게 아닌가 싶어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일부 아파트 본보기집에서 분양상담을 받기 위해 1시간 이상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분양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모든 아파트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건 아니다. 경기도와 지방광역시 외곽 등을 중심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며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건설사는 하반기(7∼12월)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대규모 미분양이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다만 저금리 기조를 바탕으로 시장 회복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고, 전세금 급등에 따른 내 집 마련 수요도 급증해 아직 미분양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아직도 거리엔 ‘미분양 현수막’

‘○○동 마지막 분양! 60m² 가격으로 110m² 아파트를 장만할 기회!’

3일 오후, 경기 수원시 화서동의 6차로 대로변 가로수에는 한 택지지구의 아파트 광고가 크게 걸려 있었다. ‘중도금 무이자 지원’ ‘발코니 확장 무료’ 등의 문구를 내건 현수막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미분양 아파트를 싸게 판다는 광고다.

‘미분양 떨이 판매’는 현수막 단속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7월 말 기준 수원의 불법 현수막 과태료 부과액은 7억3694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억8261억 원)의 갑절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다. 수원시 관계자는 “불법 현수막 대부분이 아파트 분양 광고”라고 귀띔했다.

수년간 미분양 아파트로 골머리를 앓던 건설사들은 분양 열기에 올라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 미분양 물량을 못 팔면 앞으로 언제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어떻게든 팔자” 건설사 마케팅 안간힘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줄어들던 미분양 아파트가 최근 다시 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9년에 전국 16만5599채로 정점을 찍은 미분양 아파트는 올 4월 2만8093채로 줄었지만 5월(2만8142채)과 6월(3만4068채) 두 달 연속 증가해 다시 3만 채가 넘었다. 7월 청약에 나선 아파트 단지 87곳 중 29곳이 미달됐다.

미분양 단지는 경기도에 제일 많다. 경기도에서만 6월 한 달간 2469채의 미분양이 나왔다. 광주시 태전지구, 화성시 봉담지구 등 최근 수년간 아파트 사업이 부진했던 준(準)신도시급 택지지구에서 나온 아파트들도 시장에서 모두 소화되지 않았다. 순위 내 청약은 마감됐지만 실제 아파트를 사겠다고 약속하는 계약으로 모두 이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지역의 분양가가 크게 내려갔다. 2011년 분양했던 경기 용인시 동백지구 인근 A아파트는 계약금 5%만 내면 즉시 입주하고 분양가의 75%는 최장 2년 뒤에 내는 조건을 내걸었다. 서울 강서구의 B아파트는 3.3m²당 2300만 원대였던 분양가를 1300만 원대까지 내렸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C아파트는 분양가를 최고 30% 깎아주면서 2000만 원어치 ‘빌트인’ 가구를 공짜로 달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공급 과잉” vs “걱정할 단계 아니다”

이런 가운데 건설사들은 추석을 전후해 아파트 분양 물량을 대거 쏟아낼 예정이다. 국토교통부는 올 하반기(7∼12월)에 공급될 아파트 물량이 22만 채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에 분양한 공동주택 물량(21만7796채)이 지난해 같은 기간(14만6953채)보다 48.2% 증가한 상황에서 공급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책임연구원은 “단기간에 신규 공급이 크게 늘거나 분양가 상승세가 두드러진 지역에서 미분양 증가 폭이 컸다”며 “수요자들은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청약에 나서기보다 실제 거주 목적으로 지역의 수급 분석과 가격 적정성을 따져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일각에서는 하반기 공급 확대와 일부 미분양 아파트의 가격 할인을 내 집 마련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과거와 달리 실수요자들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의 주택 구입이 늘고 그에 따른 수요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하락을 지나치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실장은 “최근 수요자들의 주택 구입 목적이 시세 차익보다는 전세금 급등에 따른 안정적 주거지 확보로 바뀌는 추세”라며 “최근의 집값 상승이 투기적 수요에 따른 것이 아닌 만큼 교통 등 주거 인프라를 고려해 하반기에 내 집 마련을 시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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