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의 향기]“참 착하시네요… 그런데 건강도 안녕한가요?”

입력 | 2015-09-05 03:00:00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게이버 메이트 지음/류경희 옮김/520쪽·1만8000원/김영사




“자기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스스로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는 편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앓을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 밴쿠버의 통증완화 의료 전문의이자 오랫동안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저자 게이버 메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어린 시절 가족 대부분이 나치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하는 것을 보고 자란 저자는 아동기의 감정적 경험에서 몸에 생긴 병의 원인을 찾는다. 저자의 경우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며 부모의 고통을 배려하는 것이 성격이 됐다. 자신의 경험과 달리 저자는 자기희생적 대처 방식을 성인이 되어서도 바꾸지 않으면 몸이 이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들은 천식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암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

책은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야구선수 루 게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등을 비롯한 수백 명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인터뷰, 세부적인 고찰들을 싣고 있다.

감정적 고통이 신체 질환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믿음의 생물학’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이 사랑할 만하고 인정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과잉 경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적대적인 대상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강해야 해” “화를 내는 건 내게 옳은 일이 아니야” “내가 온 세상을 다 책임져야 해”…. 이런 무의식적 신념이나 믿음들은 종종 자신을 포함한 주변에서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분석을 빌리면 이 신념의 생성과정은 이렇다. 세상에 대해 아이가 지각한 내용은 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된다. 이 영향이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발달 과정 중인 신경계는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적대적인 곳’이라는 전기적, 호르몬적, 화학적 메시지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지각된 내용은 분자 수준에서 우리의 세포 속에 프로그램화된다. 과학적 사실 여부를 떠나 매우 흥미로운 주장들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