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바다 한가운데 수백 명의 머리가 촘촘히 박힌 고무보트 사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가 되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보트는 뒤집히기 일쑤여서, 지난 1년 사이에만 지중해에서 3500여 명이 익사했고, 22만여 명이 인근 해안 국가들에 구출되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말마따나 지중해는 완전히 무덤이 되었다. ‘지중해 루트’가 위험해지자 최근에는 터키를 거쳐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지나는 ‘발칸 루트’에 난민들이 몰리고 있다. 이들이 헝가리를 1차 목표로 삼는 것은 헝가리에만 들어가면 유럽연합(EU)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독일이고, 그 다음이 스칸디나비아 국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프랑스나 영국이다. 마케도니아나 세르비아는 통과 지역이기 때문에 전혀 국경 통제를 하지 않고 기꺼이 열차 편까지 내어준다. 동글동글한 사람들의 머리로 차창이 가득 메워진 기차가 전원을 달리는 광경 또한 전형적인 난민 이미지의 하나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육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8월 27일, 차량 통행이 붐비는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에서 71명의 난민 시신이 들어 있는 7.5t짜리 냉동트럭이 발견되었다. 남성 59명, 여성 8명, 어린이 4명인 이들은 대부분 시리아인으로 좁은 공간 안에 포개져 있다가 질식사한 것이다.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바다에서 익사하던 난민 참사의 패턴이 이제는 고속도로 화물트럭 속 질식사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엊그제 마치 레고 인형처럼 빨간 티셔츠에 청색 반바지를 입은 세 살짜리 소년의 시신이 터키의 바닷가로 떠밀려 온 기막힌 광경까지 우리는 목도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렇게 선진국에 통합되어 인구학의 지도를 바꾸고 역사의 한 장을 새로 쓸 것이다. 그러나 그 개개인들의 목숨을 건 탈출의 신산함이 너무나 애처롭지 않은가. 국가가 자기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할 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헬(hell)이란 이런 데에 쓰는 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을 비하하며 즐겨 쓴다는 ‘헬조선’은 결국 바깥 세상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나 다름없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