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태스킹은 후기 근대의 노동 및 정보사회를 사는 인간만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 ―피로사회(한병철·문학과 지성사·2012년) 》
사람도 컴퓨터처럼 멀티태스킹 능력을 요구받는 시대다. 출근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기사를 읽는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을 메모해 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나 빠뜨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멀티태스킹형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조급해진다. 주어진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지 못할 때는 극도로 불안해진다. 남들은 최신 사양을 갖춘 컴퓨터 같은데 나만 구닥다리 컴퓨터가 된 기분이 든다. ‘프로’답지 못하다는 죄책감도 마음을 짓누른다.
저자는 현대사회를 “할 수 있다” 식의 긍정이 과도하게 넘쳐나는 성과사회라고 정의한다.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것이 이 사회의 특징이다. 이러한 ‘자기 착취’는 우울증을 낳는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피로해진다.
‘일못’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일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다.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지에는 일을 제대로 못한 사연을 털어놓으며 서로 위로하는 ‘일못’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혹시 오늘 주어진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못해 직장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면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당신이 남들보다 사색 능력이 뛰어난, 더 진화한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