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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야간투시장비도 없이 출동… 10시간 수색 ‘허탕’

입력 | 2015-09-07 03:00:00

[추자도 낚싯배 전복]‘골든타임’ 놓친 신고… 해경 수색 우왕좌왕
최초 신고자 50분 지체… 25분 지나 해경 출동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나라’였다. 5일 저녁 발생한 낚싯배 돌고래호 전복 사고도 관리감독 소홀과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였다. 연락이 두절된 지 한 시간 이상 지나서야 구조활동이 시작돼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해경 대처뿐 아니라 함께 출항했던 돌고래1호의 대응이 아쉬웠다. 해경에 따르면 5일 오후 7시 30분경 추자항에서 돌고래호와 같은 전남 해남군 남성항을 향해 출항한 돌고래1호 선장 정모 씨(41)는 이동 중 기상이 나빠지자 오후 7시 38분 돌고래호 선장 김철수 씨(46)에게 회항을 제안하고 회항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12분가량이 지난 오후 7시 50분경 돌고래1호는 추자항에 도착했지만 돌고래호 선장 김 씨는 7시 44분 “잠시만”이라는 얘기를 한 뒤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경에 따르면 정 선장은 50분이 지난 오후 8시 40분경에야 해경 추자안전센터에 휴대전화 연락 두절 사실을 신고하고 위치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 씨는 7시 50분경 직접 해경에 신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자안전센터는 오후 9시 3분에 제주해경 상황실에 보고했고 수색명령은 9시 5분쯤 내려졌다. 이후 민간자율구조선 2척이 9시 36분에, 해경 경비함은 10시 반에야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늦은 신고와 대처 때문에 돌고래호가 조난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후 7시 44분 전후를 기준으로 두 시간 가까이 지난 뒤에야 수색이 시작된 셈이다. 출동한 해경 역시 야간투시장비 없이 전조등만 갖추고 있어서 효과적인 수색이 이뤄지지 못했다.

제주해경 관계자는 “해상에서는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지연신고’로 볼 수 있는지 등은 추가적인 조사 뒤에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경이 잘못된 위치 예측으로 전복된 돌고래호를 빨리 찾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돌고래호는 7시 38분 추자도 예초리 북동쪽 500m 해상에 있다는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 신호를 끝으로 위치정보 발신이 끊겼다. 당시 해경은 이 마지막 지점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수색에 나섰다. 또 국립해양조사원에서 개발한 표류예측시스템을 이용해 돌고래호가 조류를 따라 표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쪽 해역에 수색을 집중했다.

하지만 돌고래호는 이튿날인 6일 오전 6시 25분경 수색 지역과 정반대인 하추자도의 서쪽 섬생이섬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교신이 끊긴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이었다. 해경이 2011년부터 이용한 표류예측시스템이 엉뚱한 위치를 지목한 것이다. 결국 뒤집혀 있던 돌고래호는 해경이 아닌 근처를 지나던 어선이 발견했다. 생존자 김모 씨(47)의 아내는 “남편이 ‘해경 불빛을 보고 배 위에 올라가 손을 흔들었지만 그쪽에서 우리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 관리감독 소홀… 탑승자 제대로 파악 못해 ▼

낚싯배는 ‘어선’ 분류… 승선관리 사각지대


사고 수습을 맡은 제주 해양경비안전본부는 6일 밤 12시까지 사고 발생 만 하루가 지나도록 정확한 승선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배에 타지 않은 사람이 실종자로 분류되는 황당한 일도 일어났고 승선자 주소지도 엉터리였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승선 인원이 계속 오락가락해 큰 혼선을 빚었다.

해경에 따르면 돌고래호는 5일 추자도로 출항하기 직전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성항에 선장 김철수 씨를 포함해 22명이 승선했다고 신고했다. 사고 발생 이후 해경은 당초 승선신고서에 따라 22명으로 발표했다가 돌고래호 관계자, 생존자 진술 등에 따라 인원수를 번복하다가 결국 ‘21명 추정’으로 바꿨다. 낚시관리 및 육성법(낚시법)에 따르면 낚시어선업자는 출입항 신고서 및 승선원 명부를 해경 안전센터나 민간대행 신고소에 제출하게 돼 있다. 소규모 항으로 분류된 남성항은 민간인이 해경을 대신해 입출항 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돌고래호가 해남으로 돌아가기 위해 추자도 신양항을 떠날 때 해경에 재차 신고했지만, 해경은 규정이 없어 실제 탑승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신고 의무만 있을 뿐 확인 과정이 없어 4300여 척의 낚싯배가 사실상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이다. 승선 인원 초과나 미신고도 비일비재하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낚싯배는 사실상 낚시 승객을 태우는 여객선 역할을 하면서 고기를 잡는다는 이유로 어선으로 분류돼 승선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며 “낚시업 활성화를 이유로 규제를 풀 것이 아니라 승선인원을 엄격히 관리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고가 난 ‘돌고래호’ 사진출처 돌고래레져

▼ 탑승자 대부분 “축축하다”며 구명조끼 안 입은듯 ▼

의무착용 법안 낮잠… 안전불감증 부추겨


승선한 낚시꾼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것도 화를 키웠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배가 출항했지만 비가 와서 구명조끼가 축축하다는 이유 등으로 승선자 대부분이 구명조끼를 벗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복된 배에서 구조된 생존자 3명도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다. 사망자 10명 중 4명이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이도 부력이 약한 낚시용 간이조끼인 것으로 확인됐다. 낚싯배를 관리하는 주요 지방자치단체 66곳은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은 8개월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해양수산부는 ‘필요한 경우’에만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한 현행 규정을 바꿔 반드시 착용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정부입법으로 발의했다. 현재는 승객 준수사항에 구명조끼 착용이 없고 선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입힐 필요도 없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도형/ 제주=임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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