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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의술]‘척추결핵’으로 녹은 엉치 척추뼈 재건 수술…

입력 | 2015-09-07 03:00:00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 뻔한 젊은이에 새 삶
강남세브란스 척추병원장 김근수 교수




2013년 7월 새내기 회사원 정재민 씨(26)의 지옥생활이 시작됐다. 정 씨는 허리에 통증을 느껴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동네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척추 쪽이 이상한데 큰 병원을 가보라”고 말했다.

정밀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허리에서 바로 이어지는 엉치 척추뼈가 녹아 없어져 버렸고, 뼈 주변엔 고름이 가득 찼다는 것. 녹아버린 부위로 뼈가 내려앉아 신경이 눌려있었다.

도대체 이 젊은 여성의 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뼈를 녹인 원인은 결핵균. 일반적으로 알려진 결핵은 대개 기침을 동반하는 폐결핵이다. 하지만 그는 뼈 속에 결핵균이 침투한 ‘척추결핵’에 해당했다. 증상이 나타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잘 모르고 방치했다가 큰 병이 된 것이다.



2일 척추결핵으로 하반신 마비 위기에 빠졌던 정재민 씨(오른쪽)가 김근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척추병원장(왼쪽)과 병원 산책로를 걷고 있다. 정 씨는 지난해 김 원장에게 9시간에 걸친 뼈 재건술을 받았고, 지금은 10㎝ 하이힐을 신고도 활기차게 걸을 정도로 회복됐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지옥을 거닐다 만난 ‘의느님’

정 씨를 수술한 주치의는 강남세브란스 척추병원장 김근수 교수(53). 정 씨는 김 교수를 “하반신 마비의 위기에 처한 나를 살려 주신 ‘의느님(의사+하느님)’”이라고 했다.

정 씨는 2013년 7월 처음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로부터 김 교수를 소개받았다. 첫 수술 후에도 그녀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까치발이 안 되더니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결국 몸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폴더형 휴대전화가 접히듯 반으로 접히는 증세가 나타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이듬해 5월 만신창이 상태가 되어 다시 병원에 찾아오자 주치의는 자신의 대학 선배인 김 교수에게 연락했다. 김 교수는 “후배가 환자 상태가 워낙 심해 자기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급하게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 씨를 만난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몸엔 고름이 가득 차 있었고, 척추에서 시작된 결핵균이 폐에도 번져 있어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대로 두면 20대 중반부터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할 처지였다. 정 씨는 “1년 새 몸이 망가진 것을 보며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고, 엄마와 둘이서 ‘우리 같이 죽자’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척추 수술을 하고 있는 김근수 교수. 고난도의 수술을 수십 년간 해 온 김 교수는 “척추결핵으로 삶을 잃어버린 젊은이를 치료했던 것이 내 생애 최고의 의술”이라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 9시간에 걸친 뼈 재건술

김 교수는 배와 등을 열어 한 번에 두 가지 수술을 하기로 계획했다. 우선 배를 열어 몸속의 고름을 빼내고, 골반뼈를 잘라내 보형물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후 등을 절개해 보형물을 녹아내린 뼈 자리에 채워 넣은 뒤 단단히 고정한다. 수술에는 9시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수술 성공 여부는 인위적으로 연결한 뼈가 얼마나 잘 붙는지에 달려 있다. 김 교수는 “환자 나이가 젊어 다행히도 뼈가 잘 붙었다”고 했다. 정 씨는 “마취에서 깨어나자 엄마가 ‘민아, 여기 느껴지니?’ 하며 허벅지를 쓰다듬었다”며 “허벅지 감각이 돌아와 그날 엄마와 통곡을 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수술 이후 1년이 지났고 이달 2일 김 교수는 정 씨를 병원에서 다시 만나 안부를 물었다. 이날 정 씨는 10cm 하이힐을 신고도 활기차게 걸어 다녔다. 재발률은 5% 미만. 앞으로 임신과 출산까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 후진국형 결핵에 걸리는 젊은이들

척추정형외과 수술 대부분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런 수술을 수십 년간 해온 김 교수에게 정 씨를 수술한 것이 ‘내 생애 최고의 의술’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하반신 마비로 살아갈 뻔했던 지옥에서 구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게 해마다 찾아오는 10, 20대 척추결핵 환자는 약 10명. 병에 걸린 줄 모른 채 통증을 방치했다가 한참 늦은 뒤에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쁜 생활에 내몰리며 끼니를 제때 챙기지 않다가 병에 걸려도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영양이 부족할 때 걸리는 후진국형 질환인 ‘결핵’이 젊은이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부강해졌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건강도 돌보지 못한 채 살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