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재즈 선율에 흠뻑 젖은 수성못에서의 이틀 밤

2015년 8월 6일 일요일 흐림. 못.
#174 Now Vs Now ‘Ancient Alien’(2013년)

대구국제재즈축제에 다녀왔다. 지방 도시의 인상은 단박에 서울과 구별된다. 스카이라인 때문이다. 이들 도시엔 번화가라도 2, 3층 또는 4, 5층짜리 건물이 많다. 애써 고개를 직각 꺾기 하지 않아도 파란 하늘이 아이맥스 스크린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대구 수성구에 있는 큰 연못, 수성못에 처음 가봤다. 잘 마련된 산책로에 꽃도 많이 피어 좋았다. 이번 축제의 주무대가 이곳 특설무대. 4일 밤엔 크리스 포터 트리오가 여기 올랐다. 포터는 지난해 팻 메시니의 ‘유니티 그룹’ 멤버로 방한했지만 이번엔 자기 무대였고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90분간 테너와 소프라노 색소폰, 베이스 클라리넷을 번갈아 들며 고속의 레가토로 음표 무더기를 흩뿌렸다. 미친 총잡이처럼. 다음 무대는 마이크 모레노 콰르텟. 포터와 정반대의 서정파. 모레노의 기타는 물을 촉촉이 적신 수채화 붓처럼 못의 밤, 그 캔버스를 달래듯 색칠했다.

난관은 그날 밤 잠자리였다. 주최 측이 예약해준 ‘××비즈니스호텔’로 재즈 전문지 M의 H 편집장과 함께 향했는데 방문을 여니 작은 공간에 침대가 하나뿐. 어슴푸레 붉은 조명 아래 남자 둘, 나와 H 편집장은 어색했다. TV를 트니 마침 소녀시대가 나왔다. 신의 가호. 아이돌 그룹의 음악세계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다 둘은 매우 자연스레 각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밤 무대엔 미국 뉴욕의 진보적인 건반주자 제이슨 린드너가 이끄는 트리오 ‘나우 버서스 나우’가 올랐다. 강렬했다. 전자음악과 록을 재즈에 결합해 시종 괴상한 변박으로 풀어냈다. 중동풍 보컬과 베이스 속주를 병행한 파나지오티스 앤드루도 괴물이었지만, 복잡한 리듬 소용돌이를 엄청난 속주와 강렬한 타격으로 돌파한 드러머 잭 댄지거는 수학자 출신 헤비메탈 연주자 같았다. 한국에선 구하기 힘든 출연진의 음반을 축제에서 판매하지 않는 게 아쉬웠다. 공연 끝에 있을 연주자의 묵직한 감사 인사, 관객과의 교감 같은 여운을 진행자가 성급히 끊어버린 점도.

상경한 지금, 공연을 기다리며 보낸 못의 낮이 떠오른다. 연못을 굽어보는 카페 2층 자리에서 보낸 한나절. 머릿속이 차오르고 비어지기를 반복했던 시간. 왠지 그 자리에 며칠 더 있으면 이 안에 엉킨 실타래가 예쁘게 풀려나올 것 같은.

하지만 이제 다시 서울이다. 빌딩 숲 속에 내 자리가 있다. 하늘 높은 이곳에 나만의 못이 필요하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