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애는,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중략)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페스트(알베르 카뮈·책세상·2010)
“비극적이다.” 비참한 광경을 마주할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타인이 겪는 고통이 너무 커서 나의 고통으로 인식될 때,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비극’으로 여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흑사병이 덮친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무대로 비극의 본질을 그린다.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어느 날 자기 집 층계참(層階站)에서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후 쥐를 치운 경비원과 시민들이 차례로 페스트에 감염되며, 이 돌림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활기 넘치던 지중해변의 휴양도시는 시체 타는 냄새가 가득한 생지옥으로 변해간다.
얼마 전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죽음이 전 세계를 울렸다.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가려다 짧은 생을 마친 난민 쿠르디의 모습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난민 장벽’을 허물라는 각국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어린아이가 자신의 것이 아닌 죗값을 치르는 것”을 인류의 가장 큰 비극으로 꼽았다. 쿠르디도 역시 전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무고한 어린이였다. 다행히도 카뮈의 소설 속 오랑의 시민들은 아이의 죽음 이후 질병 퇴치를 위해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고 방역 활동 등에 나서 페스트를 몰아냈다.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또 다른 ‘쿠르디의 비극’을 막아줬으면 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