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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음악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됐네요”

입력 | 2015-09-08 03:00:00

고희 맞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17일부터 국내 리사이틀




“나이 칠십이 되니까 좋은 거? 연주를 점점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돼요. 요즘은 고민도 없어요. 하하.”

올해 한국 나이로 고희를 맞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사진)의 얼굴은 덤덤하면서도 훤해 보였다.

17일 시작하는 국내 리사이틀을 앞둔 그가 7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친분이 깊었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 얘기를 꺼냈다.

“그와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데 자기 연주가 흘러나오자 기분 좋아하면서 ‘음악은 (연주한) 본인이 즐길 수 있어야 해’라고 말하더군요. 그땐 잘 몰랐는데 나이 들면서 정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보다 즐길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어요.”

예전에는 연주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남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이젠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어서 인생도 연주도 즐거워졌다는 뜻이었다.

“아직은 체력적으로 연주에 아무 문제가 없고, 앞으로 새로운 곡, 예전에 연주했던 곡 가리지 않고 더 많은 곡을 연주하는 데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그는 “음악이란 긴 여정을 가는데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연습도 쉴 수 없다”며 “1960년대 유학 당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절실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나를 이끈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과 스크랴빈 24개의 전주곡을 연주한다. 둘 다 국내에선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백건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이번 연주곡도 그가 평소 좋아하지만 한국에선 듣기 힘든 점을 고려해 골랐다고 한다.

“러시아 곡은 투박하고 인간적이에요. 우리 정서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웬만한 러시아 악보는 다 구해서 봤을 정도로 푹 빠졌어요.”

그는 이번 라흐마니노프 곡처럼 45분이나 되는 대곡을 연주한 뒤엔 앙코르 곡을 고르는 것도 신경 쓰인다고 했다. “메인 연주곡과 앙코르 곡이 너무 다른 분위기면 메인 곡의 감동을 음미하면서 집에 갈 수 없잖아요. 그래서 가급적 앙코르 곡은 짧게 가는 걸 좋아해요.”

요즘 음악계에도 쓴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악기를 통해 나오는 음악은 속일 수 없어요. 그래서 음악에 대한 진심이 연주에 묻어나야 합니다. 진심으로 파고들고, 진심으로 메시지를 담고…. 근데 요즘은 너무 상업화되면서 보기 좋게 포장되기만 한 연주들이 많아요.”

그는 17일 충남 천안을 시작으로 경기 구리(18일) 군포(19일), 서울(22일), 인천(23일) 순으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11월 23일에는 내한 공연을 갖는 뮌헨 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